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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Jan 28. 2021

다시 돌아갈 길을 잃은 당신에게 남은 선택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리뷰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면서 우리는 자꾸만 행복했던 그때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을 온전히 살지 않으면 행복했던 때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행복했던 그때로 가주세요-김재식>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넷플릭스에 가입할 엄두도 못 낸 시절이 있었다. 가입비를 뽑기엔 영상을 볼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성인인 온 가족 4명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집콕시절 넷플릭스만한 친구도 없다 싶다. <두번째 스무살>은 올 해 넷플릭스에서 만난 15회차의 한국 드라마이다.  2015년 8월 28일~10월 17일까지 TVN에서 매주 금요일 토요일 저녁 8시 반에 방영한 미니시리즈였는데 이 때 경쟁사의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절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드라마였다.



5년전 드라마라는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요즘도 공감가는 이슈로 몇 년 사이에 후줄근해 질 내용은 아니다. 엄마들의 성장은 지금 봇물 터지듯 터져서 이제는 거의 대세 흐름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가 보면 자녀들을 공부시키겠다고 진학정보를 금캐듯 집중하던 엄마들이 요즘은 본인의 <자기계발>과 <나다움>이나 <성장>에 더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실내 자전거운동을 하면서 이 드라마 시리즈를 한 회씩 보다가 회가 거듭될수록 결말이 궁금해서 결국 소파로 옮겨가서 시리즈를 다 떼고야 말았을 정도로 '이게 뭐지?'하던 초반이 지나 중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몰입된다. 대단히 거창한 결말은 없다. 주인공의 대학생활 체험기는 상당히 리얼리티가 있어 보인다. 초라했던 여인의 성장 과정을 보면  열심히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한 분이라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여 대학생활을 체험하는 기분도 느낄 것 같다. 학생들의 개성있는 연기로 아기자기한 재미와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대학생활은  중년들에게는 요즘 대학생활의 좋은 간접경험 기회이기도 할 듯!


[등장인물]



댄서가 되고 싶었던 햇살처럼 눈부셨던 그녀!

이 극의 주인공 최지우가 맡은 하노라는 꿈많은 여고생에서 하루아침에 소녀엄마(?)가 되어 전업주부로 우중충한 20년을 보내는 운 나쁜 여인. 그녀는 일찍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라는데  성장기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할머니에게 재롱 떨다가 우연히 춤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데 춤추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직하고 야무진 포부를 가지게 된다. 사는 형편에 너무 큰 꿈을 꾸느라고 힘든 아르바이트까지 나선 손녀를 보다 못해 할머니는 떡볶기 가게를 차려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녀는 서울에 있는 예고에 진학하여 평생의 절친 윤영과 연출을 꿈꾸는 현석이를 만나게 된다. 예고 무용반 학생들이 학교 교정에서 신나는 음악에 자유롭게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현석에겐 신선한 충격이고 예술적인 영감의 소재였다.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엄마가 되다!

열여덟살에 나름 PD재능이 다분했던 현석은 무용반 학생들에게  학교를 넘어선 리얼한 야외무대를 제안하고, 학생들은 의기투합하여 일반인들의 해수욕장 무대에서 그들의 춤을 공연하기로 한다. 그 해수욕장에서 당시 독일 유학 준비중인 현재의 남편의 눈에 띄어 이 우연한 사고(?)는 준비 안된 어린 여고생을 엄마가 되어 버리게 만든다. 극 중 이들의 로맨스는 그다지 달달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소 고지식한 대학생이 춤추는 하노라에게 반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어린 여고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 모양! 일찍 아기엄마로 사느라고 고등학교에서 멈춘 세상공부라 하노라는 남편의 말을 곧 법처럼 받아들이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외국에서 방콕한 채로 아이만  키웠다. 귀국해서 교수가 된 남편과는 달리 독일어도 못 하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육아와 요리 살림만 했던 그녀는 그 후 20년동안 뭘 잘 모르는 답답한 아줌마로 쭉 살아가게 된다.



20년이면 젊은 날의 실수에 대해 책임지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내 이혼은 이유가 있다!

하노라의 남편은 나르시즘의 화신에 자기합리화의 달인이며 궤변과 언행일치의 표본인 김우철교수이다.  유학 전 놀러간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의 춤에 홀딱 넘어가서 실수를 했고, 그럼에도 그 실수를 책임지고 결혼은 했으니 수준 안 맞는 결혼생활 20년 그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사람이다. 승승장구 성공을 향해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던 남편은 본인의 가치관과 대화의 급이 잘 맞는 여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는 산뜻한 이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사유는 답답한 아내에게 지쳤다는 것으로 밀어붙인다.  뭘 모르는 엄마에게는 기본 케어만 받고 똑똑한 아빠의 지시만을 따르던 아들 민수 역시 유난히 나이 어린 엄마의 존재가 달갑지가 않다.


남편과 급이 맞는 사람이 되려고 몰래 준비한 대학입학

이런 남편의 이혼요구를 아들의 대학입학이후로 미루어 놓고 결국 그녀는 이혼을 피하기 위해서 남편과 급이 맞는 여자가 되기로 하는데 어렵게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에 성공한다. 그런데 나중에 오진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녀는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진단을 받는다. 이젠 대학생활이 진짜 버킷리스트가 되어서 못 해 본 대학생활이나 해 보고 아무도 모르게 죽으리라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스무살 드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서른 여덟살에 만학도로 그녀가 입학한 학교는 공교롭게도 남편이 새로 전입하게 되는 학교이고, 2지망으로 입학한 아들까지 거기에 합세한다, 거기에 알고 보면 남편의 애인이 교수로 있는 학교이기도 하고, 입학해 보니 눈에 익한 연극과 겸임교수는 한 때 알고 지낸 예고시절 동창 차현석이다. 그래서 예산 부족한 한국 드라마답게 우리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인 그 캠퍼스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피하면서 갈등과 애정이 만나는 지점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폭탄으로 시작한 만학도의 대학생활

여기서 늦깍이 대학생 하노라의 대학생활을 보면 짠내 폴폴이다. 얼굴과 복장이 연륜을 말해주다 보니 혼자 외톨이로 삼각김밥 먹고, 옛 친구는 교수에 잘 난 척만 하며, 아들은 엄마땜에 쪽팔린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난리고 깜깜절벽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교수와 학생들에게 다 폭탄 취급이다. 특히 요즘은 강의에 그룹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더 그렇게 되는 듯.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이 외계인 수준인 그녀가 반가울리가 없다. 여하튼 우여곡절끝에 타고난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한다. 그나마 조금 싹싹한 친구가 요즘 삼광빌라에서 여주인공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연기자 진기주이다.


특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줌마! 아줌마가 강의실엔 왜??" 하면서 설움 팍팍 주는 옛날 고등학교 동창 현석때문에 엄청 서럽다. 학창시절 좀 덜 떨어진 애 취급을 받았던 외로운 아웃사이더 소년 현석은 촉망받는 유능한 독신 교수가 되었는데 솔직하고 쿨하고 공감 잘 하는 실력까지 인정받는 인기남이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했더니 완전 짜쯩내며 홀대를 하는데~~ 그 이면엔 영문을 모르는 그녀에겐 말할 수 없었던 그만 아는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첫사랑과 초라한 재회

예고시절 그는 20년후에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연출가가 될 거라고 장담해 주고 처음으로 그를 인정해 주던 하노라를 그 시절 혼자 좋아했던 모양인데, 썸타던 멋진 무용과 소녀가 혼전임신으로 학교도 졸업 안 하고 외국으로 말 한 마디 없이 가 버렸으니... 심지어 할머니의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으니 비난을 할 만한 상황이었던 것. 그 시절 이 친구는 얼마나 혼자 그녀를 좋아했는지 할머니 떡볶기 가게를 매일 드나들며 손녀딸의 얘기를 얻어 듣다가 할머니에게 밥도 많이 얻어먹고 정을 듬뿍 받았다는 이야기. 남편의 외면으로 상주가 못 온 할머니의 장례식까지 혼자 상주노릇하며 챙겼던 터라 그 모든 뒷치닥거리를 한 현석은 그녀의 존재가 첫사랑이면서 너무나 야속한 그리운 이름이었던 듯... 그런데 그 여자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 찌질한 결혼생활에다 불치병까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것이 어떤 삶인지 알게 되었어요! 여자로도 아내로도 공정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어요!

그 와중에 새내기 티를 겨우 벗으려 하는 하노라의 대학생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폭탄 돌리기로 팀플에서 서러움도 겪고 안 끼워주는 아이들 틈에서 온라인세상에서 공부하는 일도 정말 쉽지가 않았다. 성추행하는 교수에게 할 말 했다가 오히려 대놓고 왕따 당하는 학생으로 퇴출될 뻔한 위기도 겪고 이혼할 와이프 학비는 못 대겠다는 남편의 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깡으로 버텨 본다. 여고시절 춤을 좋아했지만 남편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남편의 전공인 인문대에 와서 심리학 공부를 하는 그녀.  심리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남편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제대로 알게 된다. 학생들과 짝이 되어 좋은 이성교제 데이트를 체험하면서 자신이 여자로, 아내로 공정하지 못한 대접을 받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야속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땅히 누리고 왔어야 했다.

학교축제마당에서 우연히 댄스 동아리에 가입한 그녀는 대타로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그 짧은 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옛날 모습을 기억해 내고 혼자서 목놓아 운다는! 아니 거의 절규라고 보면 된다. 이 부분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절정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다시는 예전의 '그 춤추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순간 진지하게 고민도 않고 자신이 그 옛날 놓고 온 꿈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된 것!  남편이 자신의 우주라고 생각하고 그 우주에 자신을 맞추어 온 것이 자신에게 엄청난 상실이었다는 걸 모르고 살았던 지난 시간이 억울하고 야속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에게 참을수가 없었던 슬픔이 복받쳐서 어쩔줄 몰라한다.



현석은 딱 적당한 거리에서 하노라가 자신을 찾도록 은근히 도와주는 역할인데 결국 그녀는 명분없는 대학생활 집어치우고 자신의 인생을 찾는다. 이제야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왜 그만두냐는 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썸을 타게 된 교수인 현석에게 어울리게끔 대학을 졸업하겠다는 예전식의 성공드라마도 거부한다. 남은 등록금을 계산해 본 그녀! 남은 인생에서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퇴를 하기로 결심!

현석의 옆에서 또 다시 의지하고 살기 싫어서 일자리 다 거절하고 떠난 하노라가 선택한 자립은 할머니의 분식점 계승! 파트너에게 맞추려고 학벌을 선택하지 않는 여자!! 투자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드는 대학 결국 걷어치우고 자립의 길을 찾는다. 친구들은 현석과 급을 맞추라고 조언도 하지만!! 그깐것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한편 하노라의 남편은 이혼공증 이행에 문제가 생겼다. 그 지긋지긋한 와이프가 아무리 말려도 학교를 다니더니 갑자기 얼굴 딱 쳐다보고 말을 또박또박 잘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막무가내인 자기 요구를 차분하게 받아치고 오히려 이혼공증을 요구한다. 게다가 후줄근한 복장으로 집안일 하던 가사도우미같던 답답한 아내가 대학에 간 뒤에는 햇살처럼 눈부셨던 옛날의 광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워낙 드라마에서  그는 이기적인 존재인지라 양 손에 두 여인을 두고 저울질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이혼공증서류를 우연히 발견한 아들은 그 때서야 아빠의 가식적인 이중성에 분노하게 되는데... 제대로 학교 교육을 못 받고 일찍 엄마가 된 것이 엄마 잘못이 아닌데 안 통한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아빠의 이기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 닥치고 공부만! 하라는 아빠의 교육철학에 반기를 들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진정한 어른이 되어 보려고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과거의 꿈을 붙잡고 현재를 살 수는 없어!

숨 막히게 답답한 인생에서 조금씩 변화한 세상에 우뚝 서는 엄마의 이야기가 뻔한 스토리 전개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성장과정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급기야는 남편의 애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을 때 담담하게 하는 말이 멋지다. 비난의 눈도 질책의 제스쳐도 없다. 그냥 딱 한 마디.  "그 사람 가지세요!" 하노라는 낮에는 분식점 사장으로 저녁에는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사서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멋진 떡볶기가게 사장님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내 힘으로 살게 해 주는 이 작은 가게가 무엇보다도 행복한 곳!

 



좋게 살다 가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다 가기 =>> Well dying!!



이 드라마가 전하는 키워드는 Well dying! 만족하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 오늘이 불행하면 내 과거는 불행한 역사가 되고 오늘이 행복하면 과거도 행복해진다는 것. 김재식시인의 <행복했던 그때로 가주세요>의 구절처럼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면서 우리는 자꾸만 행복했던 그때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을 온전히 살지 않으면 행복했던 때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충분히 자신의 시간을 즐긴 사람은 다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 번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바로 현재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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