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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Mar 02. 2021

위기인 동시에 기회

집콕 생활 1년 후기

작년 3월부터 하던 일을 접고 제2의 인생을 출발했을 때 사실 나는 줄곧 집콕 생활을 내 미래로 꿈꾸어보지는 않았다. 하긴 그 누가 알았을까? 2020년 2월 코로나가 플루처럼 여겨질 때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할 때만 해도 내내 이렇게 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나이 만 스물셋에 취업을 하고 수십 년간 그 힘든 조직생활을 끝내고 소위 말하는 약간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자마자 생각한 것이 뭐였겠는가? 내가 속한 이 좁은 방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로망을 이제야 실현하는 줄 알았다. 어찌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담장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대개는 삶의 철학도 비슷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매우 안전하고 보호받는 삶을 누렸다.


꿈에 그리던 제2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코로나의 위험이 고조될 무렵 정신없이 세월에 떠밀려가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아들은 미뤄놓은 입대를 자원해서 떠났고 딸은 코로나로 더욱 힘겨워진 취준생이 되었다. 고시원도 도서관도 못 가겠다는 예민한 그녀의 뒷바라지를 하며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평생 처음인 전업주부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집안에서만 갇힌 상태로.


갇힌 식구들 챙기기와 나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일이 어느 것 하나도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없어서 운이 좋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옛 동료들은 걱정을 해 주었다. 몇 달 지나면 내 카톡에 해외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업데이트될 거라고 기대하던 그들은 직장도 없이 날마다 방에 갇힌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했다. 그들의 짐작과는 달리 처음 몇 개월은 일하러 가지 않으니  그 홀가분함에 신이 났다. 그러나 수개월 지나고 보니 어디에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할지 십 대 이후로 처음 나 자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삶은 나에게 늘 '~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도 하다 못해 '숙제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가 따라다니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일상도 있었다. 그런데 내 인생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워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왔다.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의무와 자식을 돌보는 의무에서 해방되고 나니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이 '자유의 시간'을 기다리며 열심히 참고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골드 에이지가 되어 꿈꾸는 자유를 실현하니 막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막막해졌다. 바쁘게 사느라고 그동안 생각할 틈도 없었고 그저 가슴 두근거리며 그 날을 막연히 기다리기만 했었나 보다. 닥치고 나니 나 역시 백지를 앞에 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매일 누군가를 위해 살다가 이제 '너 혼자 놀아도 돼! '하고 번지점프대에서 떨어지는 기분.


눈빛 하나로 아이들을 제압하는 카리스마도 장착하고 후배들의 시험문제를 보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베테랑 교사가 되었을 때 그동안 쌓은 경험과 공부에 바친 시간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생전 처음 순수한 나 자신의 결정으로 내가 속해있던 그 세상을 떠나왔을 때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그때 떠오른 내 마음속의 대전제는
'지금부터 행복할 것' , '~하고 싶은 것 뭐든 하기'였다.


우선 그동안 뒤처졌던 세상을 따라잡기로 했다. 

 마치 누가 쫓는 것처럼 새로운 배움에 빠져 들었다. 그동안 잘 보지 않았던 자기 계발 도서에서 시작하여  SNS의 새로운 문화도 흡수했다. 묵혀 둔 페이스북과 인스타 그램의 아이디를 활성화시켜서 비즈니스 계정으로 전환, 쇼핑 태그를 달고 인스타에서 셀러도 되어 보았다.  얼굴도 모르는 상품의 공구 판매권을 얻으려고 비대면으로 어떤 중소기업의 사장님에게 공구 제안도 해 보고, 스마트 스토어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도 되어 약간의 판매 경험도 쌓았다.  블로그 광고수입에서 시작해서 블로그 차트 상위 1% 블로거도 되어 보고, 체험단에 뽑혀서 공짜 생필품도 누려 보았다. 출판사 써포터즈로 선정되어 내 돈 안 내고 책도 얻어 보고 활동비도 받았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축적하진 못했지만 온라인에서 만들 수 있는 주소는 거의 다 입점했다.


1년이 지나면 부서도 바뀌고 내 아지트도 다 반납하는 예전 일터와는 달리 여기선 내 이름으로 쌓은 것들이 계속 내 기록으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 아직도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SNS에서 비대면으로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에 불안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다. 진정성이 문제지. 어디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몇 번 과장된 광고에 속아 의미 없는 곳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진정성 없는 이웃도 알아보게 되었다. 댓글에 '우리 집'에도 와 달라는 이웃은 대개 부업광고나  제품 광고로만 덮인 사업자 계정이였다. 찐 이웃은 떼쓴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는 사람에게 끌린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독서와 취미생활로 채우고 블로그는 이웃을 사귀는 곳으로 차츰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기회를 찾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하고 개인 브랜딩을 하고 줌 강의로 사람을 모으지만 1년을 이런저런 강의를 들으며 이 세계에서 굴러 본 내 판단은 기회를 잡기 위해 바친 돈이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것! 주식처럼 나한테까지 소문난 기회는 기회가 아닌 거다.


단지 소소한 용돈 정도! 열심히 블로그 키워드를 잡아 잘 팔릴만한 인기 있을 글을 써 보고 확률 높은 이벤트에 참여하면 매 월 한 두 권 사 보고  치킨 한 마리 정도의 수입은 얻을 수 있다는 정도로 내 온 택트 경제수업은 끝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웃이 비댓으로 묻기를 다들  블로그로 부수입을 얻었다고 후기를 쓰는데 혼자만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정말 블로그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나요?" 하고 비댓으로 문의하면 나는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분들은 대단한 분들이에요 ㅎㅎ"하고 답글을 단다. 뭐든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다 고단하고 어렵고 성가시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집밥이었다.

하루 세 끼는 어쩌면 그렇게도 잊지도 않고 차곡차곡 다가오던지~~ 아침은 시리얼로 점심은 각자 학교와 직장에서 해결하고 저녁 한 끼만 밥상을 차리던 내가 하루 세 끼를 차리다니!! 몇 달만에 수십 년 집밥 내공은 다 털리고 바닥이 났다. 그렇게 올해 재택근무로 바뀐 후에 두 어 달 남편과 취준생의 식사를 담당해 보니 집밥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급기야 남편이 밥 한 끼 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2,3일에 한 번씩은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메뉴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루 한 끼 1개월 식단은 짜도 하루 세 끼 식단은 돈 받고 일하는 직업인인 영양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돌이켜 보니 나 역시 철들고 나서는 점심은 대충 스스로 챙겨 먹은 기억이다. 그 시절 집밥의 대가였던 우리네 엄마들도 아침은 대충 찌게에 점심은 밑반찬 싸서 도시락 보내고 해가 지면 늘 "오늘 저녁은 뭘 할까?"가 고민이셨다. 엄마 심부름으로 콩나물과 두부를 사러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집콕 생활에는 하루 두 끼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고객 만족도를 따져보나 업무 효율성으로도 바람직한 그림이 아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 않는 집콕 생활에 끼를 먹어 보았자 나이 들어가는 우리 부부나 다이어트로 몸매 관리하고 싶은 아이나 이로울 것이 없다. 기껏 해 봐야 당이나 콜레스테롤 수치만 올라갈 뿐이다. 그럼 이 아점은 언제 해야 하나? 아침 일찍 독서를 하는 나를 제외하고 늘어지게 자는 식구들에게 아침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10시부터 12시까지 밥을 찾는다.


처음엔 건강을 생각해서 샐러드와 과일이나 커피로 아침을 차렸더니 별로 먹지도 않고  점심때까지 잠시 쉬려고 하면 늦게 일어나서 각자 식탁에서 아침인지 점심 인지도 모를 내 밥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기분을 살피다가 여의치 않으면 배달앱을 꺼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야말로 아메리칸 스타일 브런치는 나 혼자 기분 내서 먹는 것일 뿐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다시 식구들의 늦은 아침을 해 줄 시간이 온다.


게다가 10시부터는 집중력이 좋을 시간이라 나는 방해받지 않는 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 브런치는 포기하고 아침에 점심까지 메뉴를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국이나 찌개에 일품요리 소스와 나물무침 등의 밑반찬을 준비해 두면 원하는 시간에 각자 일어나서 먹는 것이다. 핸드드립 커피도 미리 준비했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나까지 굶고 있을 필요도 없고... 일찍 일어난 나는 일찍 일(~)하고 의무를 다 한 다음 내 일(?)을 하러 내 방으로 간다.  저녁은 넉넉하게 준비한 아침 메뉴를 한 번 더 가거나 거기에 생선이나 고기구이 또는 일품요리로 가볍게 차린다.


중간에 에프 양(에어프라이)에게 부탁해서 고구마나 옥수수, 치킨을 굽거나 남편이 좋아하는 팥찐빵을 사 두었다가 쪄 주기도 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오븐을 돌려 새로운 간식 레시피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과일은 아침에 미리 준비해서 밀폐용기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일찍 깎아서 색깔이 변했느니 해도 이젠 나도 식구들이 먹고 싶을 때 과일을 깎아서 대령하는 수고는 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집중 케어는 성인이 될 때까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으면 내가 처리하면 된다. 갈변한 과일도 믹서기에선 다 받아준다. 버티면 남편이 깎아 올 때도 있다. 역시 가사는 버티기가 중요한가 보다.


아침에 미리 다 준비해 두니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요즘은 과일 스무디나 두유나 시리얼로 가볍게 혼자 아침을 먹기도 한다. 주말 늦게 일어나는 남편이 아점을 찾는 10시~11시경 같이 아침을 먹기도 하는데, 미리 핸드드립해 놓은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설거지는 남편이 맡아 준다. 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를 뽑아 놓으면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먹겠다고 그 좋아하는 커피를 묵혀둔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나서 설거지를 하라고 내가 운영의 스킬을 발휘해 보니 남편도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한 식사를 즐기게 되었다. 물론 아침의 식사 준비에 쓰인 그릇들은 모두 내가 설거지를 해 둔다. 설거지 그릇이 많아지면 남편은 언제 끝날까 수심이 깊어지고 잔소리가 많아진다!



이렇게 집밥 문제를 직장에 다닐 때처럼 효율적으로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요령껏 해결하고 나서 내 시간을 긁어모아서 운동, 취미생활, 스터디, 독서로 꾸리고 일상을 바인더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독서를 하고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오늘의 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식사 준비 후에는 커피를 끓인 후에 신문을 읽고 내 SNS에 포스팅을 한다. 식구들이 각자 아점을 챙겨 먹고 자기 일터나 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내 하루를 온전하게 누린다.


아점을 먹었으니 점심 준비시간이 따로 필요 없어졌고 서둘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  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집에 돌아와서  일하는 남편에게 졸음도 쫓을 겸 커피 한 잔을 더 가져다  준다. 그리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아이패드로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감성 드라마 여행에 빠진다. 그 후에는 남편이 재택근무를 끝내는 동안 저녁시간까지 글쓰기, 강의, 취미생활로 보낸다.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는 동안은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 저녁식사 후에는 남편과 TV를 같이 보면서 오늘 하루 각자 지낸 이야기도 하면서 Home time을 가진다.



 이 저녁 시간에 남편에게 가끔 무시당하면서 내가 투자한 주식 몇 개의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체크도 해 본다. 누가 몇 점이나 받을 것인지 트로트 오디션의 가수들의 노래를 진단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취침시간이 되면 먼저 거실에서 사라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우리 집 밥이 문제없이 돌아가고 내 컨디션도 좋아진다는 걸 아니까 평일에는 서둘러 잘 준비를 한다. 자기 전에 하는 일은 이웃 방문이다. 이웃들과 댓글로 소통도 하고 절친은 자주 왕래해서 안부를 챙긴다. 말로 해야만 정이 오가는 것은 아니다. 침대 위에 벌렁 누워서 런던의 코로나 격리 이야기를 듣고 미국 사는 이웃과 요리 이야기며 책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후에 전화를 제외한 모든 SNS의 알림은 꺼 두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미처 못 만난 댓글도 다 저장해 준다.


기분이 나면 감사 일기도 쓰고 오늘 하루의 기쁨 채집도 한다. 감사와 기쁨에 대한 주제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쓸데없는 걱정과 부질없는 감정으로 하루를 마감하지 않아서 좋다.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은 하루의 축복 명상과 함께 스트레칭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는 감사와 기쁨 채집으로 끝내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전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격리기간 집콕 생활은 위기이면서 기회! 태어나서 이토록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려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처음에는 불운하게도 내가 퇴직하자마자 코로나가 왔고 여러 가지로 위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격리 가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더 행복해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이 '나'를 잘 데리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달렸다면!


1년의 목표에 맞추어 매일 내가 정한 미션에 도달하는 '소소한 행복'에 성공하는 하루하루가 한 달, 또는 1년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실패하면 또 하루를 다시 살면 된다. 오늘이 행복한지 궁금하다면 나에게 물어보면 될 것! 오늘만 살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지! 행복이 뭐 대단한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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