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여행자 사이의 일> 中
경험과 기억의 관계가, 나는 늘 불만족스럽다. 세상은 어떤 단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컬러였다가, 총천연색의 스토리였다가, 그것도 몇 년 지나면 무지개색 정도로 쪼그라들고, 종국에는 좋은 일 나쁜 일, 흑백으로 수렴되어 버리곤 한다.
그리고 경험과 기억의 관계에서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 그건 때로 이 과정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어떤 여행은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는 순간 명료하게 좋은 여행이거나 나쁜 여행이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 몇 개월이 지나고 보면 그런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깊은 여행과 얕은 여행의 범주라면 또 모를까.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하나의 총체로 묶어서 바라볼 수가 없다. 자동차 백미러에 비친 반짝이는 네바 강변 풍경, 화려한 여름 궁전 한쪽 끝에 다다랐을 때 온몸으로 달려들던 뻘밭 냄새, 강변 공원에서 사워 비어를 따서 처음 들이켰을 때의 맛. 점점 사소한 순간들을 되짚게 된다. 그러다 보면 끔찍한 사건들도 단순히 끔찍했던 것만은 아니다. 강도 사건, 영사관행 버스비를 벌기 위한 구걸, 기형아 전시관, 체리 진액을 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 거짓말, 거짓말로 성취한 비밀스러운 호사, 그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