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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Nov 28. 2017

할로윈 아침

BC생활기 19

작성일: 2017. 10. 31


첫째가 학교서 만든 Jack O' Lantern

#BC생활 19


할로윈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느낀 점이 있어서 몇 자 끄적여본다. 정말 한국과는 다른 생경한 풍경들이 이채롭고 매력 있더라. 


1. 여기서 할로윈은 정말 대대적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서 다 함께 Jack O'Lantern을 만든다고 호박 속을 파서 이름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전 집에서 3개나 혼자 파서 만들어 봐서 금방 팔 수 있었는데, 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호박을 찾는 게 일이었다. 좋은 호박들이 대부분 sold out 상태라 남은 게 별로 없더라. carving tool은 미리 사놓지 않으면 아마 사기 힘들 거래서 미리 사놓았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쨌든 결국 고르고 골라 그나마 말짱한 것 구매했다. 애들이 왜 이리 못 생긴 거 사왔냐던데, 살짝 울화가 치밀었다. 다 팔리고 남은 몇 안 되는 호박들 중 깨져서 내용물들이 쏟아지고, 곰팡이들이 피고, 뭉개진 것들을 보지 않고 나에게 예쁜 호박만을 사 오라고 하는 아이들이 살짝 야속했다. 살짝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없다. 없어!. 간신히 구해온 거란 말이야!"


2. 할로윈은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더라. 아이들 중심의 스케줄인 이 나라에, 할로윈+크리스마스는 진짜 애들만을 위한 애들의 날이다. 집집마다 Trick or Treat를 하며 캔디를 받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캔디를 다들 코스트코 등에서 잔뜩 구매해놨더라. 만발의 준비, 장전 완료. 나는 한국의 마이쮸 등등으로 구비해놓았다. 다른 사람들과 뭔가 똑같으면 기억에 안 남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엇을 준비해도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다는 건 축제를 경험해보고 알았다. 캔디를 먹으려 얻는다기 보다는 그냥 얻는 행동 자체가 재미있는 듯했다. 누가 더 많이 받아오는지, 성취욕구가 더 큰 느낌이라고나 할까. 


3. 어른들, 선생님은 기본이고 부모들도 할로윈 코스튬을 입더라. 일단 선생님들은 다 입었다. 심지어 office 선생님들까지. 행정업무 때문에 잠시 office에 갔다가 인디언 분장을 한 분을 보고, 순간 살짝 놀랐다. 그리고 멋있다고 하니, 오피스 선생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는 "Happy Halloween!"으로 서로 나누고 돌아 나왔다.


학교 교직원 말고도 애들 데려다주는 학부모들도 꽤 많이 할로윈 분장을 했더라. 아들과 똑같이 배트맨으로 통일한 사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 분장, 악마 뿔 머리띠, 등등 다양하고 재밌더라. 난 아침부터 애들 둘 코스튬에 큰 호박 2개에, 갈아입을 옷까지 바리바리 들고 다녀서 정신이 없었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연예인 코디네이터 코스튬(?)으로 보면 될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4. 역시 남자애들은 Star wars, Marvel과 DC comics 가 대세였다. 남자애들한테는 대체로 멋지고 강한 게 인기다. 근데 Star wars는 신기한 게 죄다 dark side다. 애들 말로 '좋은 편 vs 나쁜 편 ' 하면 압도적으로 나쁜 편이 이긴다. 다른 건 다 좋은 편인데, 유독 Star wars만 그렇다더라. 내 눈에도 다크사이드가 더 멋있게 보이긴 했다. 착한 주인공들이 영 태가 나지 않는 코스튬이다 보니. 


5. 같은 반에 "지써오크! Are you Kylo Ren? Me too!"를 만났다.(엄청 신나 하더라. 귀여운 캐네디언 키드. ) Darth Vader는 스태디셀러긴 한데, Kylo Ren이 상대적 뉴페이스라 그런지 몰라도 애들이 많이 입었다. 나름대로 약간 희소해 보이고 싶어 선택했는데, 실패!


처음엔 닌자 복장 입고 싶다고 했는데, 같은 반 친한 친구랑 똑같이 입고파서였다. 그 아이는 진짜 닌자 분장을 했더라. 멋있더라. 금발의 닌자. 이질적인데도 워낙 생긴 게 출중하니 어울리더라. '우리 애 안 입히기 잘했네, 휴우'하고 안도했다. 


6. Trick or treat을 할 때 부모가 그대로 애들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엔 12살 이전까지는 무조건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캔디를 얻는 동안 조금 멀찌기 떨어져서 보고 있다. 하긴, 일부 집들이 아주 무섭게 꾸며놓았는데, 입구부터 음산하다. 소리도 귀신 소리를 틀어놓기도 했는데, 그런 집일수록 캔디가 두둑이 나온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애들이 나중엔 뭉쳐서 캔디 사냥(?)을 다니더라. 상대적으로 부모들도 약간 느슨히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할 일이 진짜 많더라.)


7. 그나저나 오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10주년 기념일인데. 여기 분위기상 할로윈에 밀리는 중이다. 그래도 우리도 기념해야 하는데, 애들을 위해서 일단 할로윈부터 챙기기로 했다. 그래, 아이들이 자라날 때까지 부모는 살짝 뒷절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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