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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Nov 28. 2017

부끄러움과 반성의 날

BC생활기 21

작성일: 2017.11.4


#BC생활 21 부끄러움과 반성의 날


나도 한국의 옛 교육을 받은 세대다. 차별하지 않는 자세, 평등함과 이해 등등을 제대로 배운 세대가 아니다.  그런 점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래도 알았던 지라, 자라면서 인식이 생기고 나서는 차차 배움으로 부족함 점을 메우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나이 들어서 배운 것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머리로 알기 때문에 한번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상태. 뭐 그런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크게 한번 더 배우고 반성했다. 나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한번 더 깨달았다.


우리 집이 있는 건물에는 선천적으로 양 팔이 많이 짧아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이 산다. 아시아 계열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머리가 노란 캐나다 현지인이다.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이 남자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다. 정말 예쁜 와이프와 너무 깜찍한 딸아이와 산다.


처음 그 가족이 이사 오던 날, 우연히 내가 문 앞에 있던 터라 불편한 몸으로 캐리어도 옮기고 어린 딸도 돌보는 아저씨 대신 문을 잡아주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했기도 했다. 그런데 난 도와주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단호하게 말해서 그냥 가던 길을 갔다.


그날 나름대로 '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내 성격상, 그 아저씨는 자신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한 인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도움이 필요 없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볼 일이 없었는데 오늘 아이들과 저녁에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집으로 초대한 듯 한 친구와 편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결코 나쁜 의도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나 자신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몸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큰 아이가 거리낌 없이 바로 "Hello!" 하고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더라. 덩달아 같이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 아저씨와 친구도 반갑게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Hello."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많이 부족한 인간이구나. 생각해보니 큰 아이의 반에는 사지를 자유로이 쓸 수 없어 휠체어 생활을 하는 아이가 있다. 말도 'Hi'와 'Why'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친구와 같이 반에서 생활하고 어울리고 하니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이에 대한 사고가 잡히고 있다고 보인다.


한 번은 내가 "장애인은 어떻게 대해야 하지?"라고 물어보니, "우리가 이해해줘야 해요."라고 답했다. 기존에 내 사고로는 '도와줘야 하죠'가 답이 되었을 텐데. 이 말에 나는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아이는 그냥 같은 인간, 동료, 같은 반 친구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장애인을 같은 반에서 본 적도 없고, 차별 없이 어울려보거나 함께 생활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만약 학교에 그런 친구가 전교 통틀어 1명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이지, 동등하게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또 한 번 아이들을 통해서 배웠다. 나는 많이 부족한 인간이었구나. 아이들이 그래도 바르게 자라고 있구나.  이렇게 두 가지를 알게 된 날이다.


다음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해봐야겠다.


"Hello."


참 쉬운 말인데,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오늘 무척 아쉬웠던 그 한마디다.


덧. 사진은 이제는 거의 원숭이가 거의 다 된 우리 아해들.
monkey bars에서 자유롭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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