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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Feb 19. 2018

똑똑한 바보

퀸비는 피하는 게 답이다

난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혼술을 하곤 한다. 잠이 너무 오지 않거나 속이 상한 날은 딱 한잔의 와인으로 크게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싸고 유명한 와인보다도 남편과 함께 실험정신으로 구매해봤던 로컬 와인이 딱 마음에 들어 15불 언저리의 와인들을 종종 구매해둔다.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와인 맛도 잘 모르고, 그냥 내 입맛에 괜찮은 것들만 골라 마시기 때문에 그리 부담되지도 않는다. 소위 <신의 물방울>에서 나왔더 그 이름도 요란해 기억하기도 어려운 와인들은 가격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살짝 무서울 것 같다.


어쨌든 지난 금요일 밤, 아이들을 재워두고 2주 전에 사두었던 와인을 또 한잔 들이켰다. 약간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이날따라 아이들이 왜 이리 어렵고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이들에 속상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아주 오랜만에 혼자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서 다시 한 번씩 꼬옥 포옹해주고 방에 들어와 잠들었다.


이날은 금요일이자, 설날이라 이 지역에 딱 한 명 있는 한국인 언니네 가족과 설음식, 떡국을 해 먹기로 했다. 그 언니네 집은 타운하우스 단지에 있는데, 학교 앞 타운하우스는 같은 뒤뜰(back yard)을 공유 중이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나와서 함께 잘 어울려 놀곤 한다. 우리 아이들도 거기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라. 그리고 둘째네 같은 반 친구이자, 같이 어울려 놀고 있던 남자아이의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남자 애들과 여자 애들이 다투네요.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인 거 같아요.'


무슨 일인가 해서 뛰어내려 갔는데, 여자애들 무리 세명과 우리 아이들이 다툼이 생겼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아이 중에 첫째와 다툼이 있더라. 무슨 사연인가 봤더니 우리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모으며 놀고 있는데, 여자아이들이 가져갔다. 그래서 아이가 화가 나서 어필을 아주 강하게 했더라. 욕설도 한 것 같다. 내가 내려가니 여자 아이들이 우리 큰 아이 탓이라고 말을 한다. 자기들은 훔친 게 아니라 장난한 건데 우리 아이가 욕을 심하게 했다며, 학교에서 있던 예전의 모든 일들까지 긁어모아서 나에게 이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속에 갈등과 함께 아이에게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더라.


일단 그 여자 아이들 중 한 명은 좀 유명한 편인데, 금발의 Queen Bee다. 워낙 자의식이 강하고 새침한 편이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을 벌써부터 무리 지어 다니고 있다. 보통내기는 분명 아니더라. 게다가 으레 비슷한 또래들이 그러듯이 우리 아이들은 남아라 말을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잘하지 못한다. 상황이 무척 아이에게 좋지 않더라. 어쩔 수 없이 욕을 한 우리 아이의 잘못이 가장 크므로 아이를 혼내고 다시는 욕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과 후의 여자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여러모로 태도가 Queen Bee와 같은 행동이다.


깍쟁이와 같은 여자아이들에게 바보같이 자기 내키는 대로만 하는 우리 큰 아들이 안쓰럽더라. 그래서 따로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여자 애들은 보호해줘야 해. 그렇게 함부로 막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 그리고 욕한 건 무조건 잘못한 거야. 그래서 네 잘못이야."

"그런데, 쟤네가 제 것을 가져갔단 말이에요. 그리고 쟤가 원래 저한테 먼저 맨날 못되게 굴었어요."


하며 울음을 터트리더라. 익히 그 Queen Bee가 우리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것은 알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은 바보 탱이 첫째는 자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도 끊임없이 다가가고, 이는 곧 갈등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왜 자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까지 호감을 사고 싶은 것일까? 아이에게 울화도 치밀더라. 한마디로 속이 터졌다.


"모든 사람이 너를 다 좋아할 수 없어. 그리고 너를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어울리기 싫다는 아이라면 가까이 가지 말자. 그래 봤자 어차피 싸움밖에 안 될 거 같다."


아이는 기어이 엉엉 운다. 꼬옥 안아줬다. 이 바보 탱이. 가슴이 아파서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살짝 눈물을 훔쳤다. 우리 첫째 아이더러 내 동생이 이리 일렀던 적이 있다.


"똑똑하긴 한데, 스마트하지는 못해."


참 아이를 제대로 표현한 말과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화도 곧잘 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아이일진대 희한하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처능력이 잘 배양되지 못하니 희한한 노릇이다. 매일같이 북한을 걱정하다가 남북한의 올림픽 상황을 보고 크게 기뻐할 줄도 아는 아이인데. 학교에서 한국 평창을 알리고, 수호랑이를 홍보할 정도의 지력은 분명 있는 아이인데. 그때마다 크게 칭찬해주고 잘했다고 예쁘다고 해줬는데.


아이에게 욕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데, 친구들이 욕을 가르쳐주나 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욕하는 것보다 우리 아이가 하는 것에 Queen Bee가 더 민감하게 대하더라. 그리고 내 앞에서도 '걔들은 안 그런다'라고 하더라. 그럼 우리 아이가 누구에게 욕을 배웠을까. 집에서는 분명 아닐진대...... 영어로 된 욕이던데. 남자애들 사이에서 어떻게 말이 오가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냥 쟤네들은 모르겠지. 이게 일종의 차별인지도.


집에 돌아와서 아마 열 번도 더 넘게 말한 것 같다. 너를 싫다는 아이들과 어울리려 들지 말아라. 세상 사람 누구나 다 너를 좋아할 수만은 없다.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더라.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슬펐다. 와인의 힘을 빌어 그냥 약간 편히 눈물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서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자라면서 더 세상을 배우리라. 내 마음과 모든 이가 다 같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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