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C생활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융융이 Feb 25. 2018

눈 오는 밴쿠버

눈 좀 치워라

내가 사는 곳은 정확히는 리치몬드인터라 밴쿠버라 말하기엔 어색함이 있지만, 대체로 'Metro Vancouver'라 묶어서 설명하기도 하고, 'Richmond'라고 하면 과자점부터 생각하는 터에 밴쿠버로 제목을 붙였다. 솔직히 다리 하나만 넘으면 바로 밴쿠버가 등장하기 때문에 먼 거리는 아니긴 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다리 건너 바로 살고 있는 통에 10분 정도면 밴쿠버에, 20분 정도면 다운타운에 도착하기는 한다.


어쨌든 이곳은 내가 오기 전에 알고 있던 정보에 따르면 겨울은 우기라 비가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균 기온이 0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므로 추운 겨울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 말처럼 살면서 아주 추운 날이 썩 많지 않았다. 0도 이하로 좀처럼 내려가지는 않았고, 비는 내리 주룩주룩 오는 날씨긴 했다.


비가 얼마나 지겹게 오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어느새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어색할 정도가 되어 갔다. 아마도 영하로 내려갔으면 비가 아니라 눈이 이렇게 내렸을 거라 생각이 들어 가끔은 서안 해양성 기후임에 감사하기도 했다. 1시간 거리의 스키장을 가보면 특히 이런 생각이 강해지곤 했는데, 운전하고 가는 동안 내내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고 있었는데, 산으로 올라가면서 비가 눈으로 서서히 변해 스키를 타는 장소엔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 리치몬드는 희한하게도 평지밖에 없다. 언덕이 아예 없기 때문에 눈이 와도 미끄럽다는 걱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안가에 가까이 붙어있는 곳이라 눈이 잘 쌓이는 곳도 아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사람들의 풍수지리(?)적 해석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용의 여의주의 형상과 지리적 특성 등등 때문에 이곳을 개발시켰다고 하던데, 진짜 여러 이점이 있더라. 밴쿠버 국제공항도 리치몬드에 있다고 한다면 이해가 좀 될는지 싶다.


그렇게 눈이 오지 않는 겨울에 점차 익숙해지던 찰나였는데, 어제 갑자기 눈이 엄청 내렸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함박눈이었다. 원래는 내내 비로 내려야 하는 것이 영하의 날씨로 눈으로 바뀐 듯했다. 원래대로라면 잘 쌓이지 않았을 눈이 덕분에 가득 쌓였다. 아주 많이 쌓인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더라. 일단 남편과 신혼 시기를 뉴욕 주의 이타카라는 도시서 지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2피트(60cm) 가까이 내리던 미국 동부의 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곳은 눈이 와도 쉬이 휴교를 한다든가 일정을 취소하지도 았았으니까.


그런데 이곳은 다르더라. 일단 눈이 이렇게 오고 쌓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더라. 작년부터라고 일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제설작업이 더디더라. 그리고 큰 곳 일부만 되고, 구석구석 작은 길들은 전혀 제설의 여지가 보이지 않더라. 알고 보니 대부분 자기 집 앞은 자기가 해야 하고, 이곳은 제설에 대한 대비가 썩 잘 되어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문득 한국에서의 경험이 어땠는지 되짚어 봤다. 그래, 생각해보니 꽤나 제설 작업이 빠르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눈이 펑펑 내려도 겁 없이 일정을 소화하러 다니던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이런 내 마음과 다르게 이곳은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하더라. 심지어 성당에서까지. 안전을 생각한 것일 게다. 그리고 눈이 아주 익숙한 곳은 아닌 게 아닐까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살던 한국의 서울이 참 작지만 단단한 도시였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일은 일정이 취소되진 않으려나? 아침에 오는 전화에 신경을 두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술 마셨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