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융융이 Mar 08. 2018

‘조사’의 대단함

일단 말부터 좀 해보자

제임스와 한국어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데, 그래도 그 사이 꽤 많이 기본적인 표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커피 좋아해.” 

“이거 뜨거워요.” 


같은 말들은 곧잘 하고, 이제 조합을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러 가긴 한다. 그런데 저 두 문장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조리 ‘조사’가 빠진 형태다.  


“나는 커피를 좋아해요.” 

“이것은 뜨거워요.” 


이렇게 조사가 필요한 문장인데, 모두 그냥 일단 생략해서 쓰고 있다. 조사를 생략하고자 한 것은 제임스의 의지라기보다는 나의 아이디어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스스로 써보고 소통을 해봐야 재미있는데 조사를 가르치다 보니 도무지 단시간 안에 대화를 가능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는’과 ‘가’만 해도 그렇다. ‘내가 커피를 좋아해요.’, ‘나는 커피를 좋아해요’ 어떤 상황에 어떤 것을 골라 쓰라고 할지, 그 뉘앙스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아직 나 스스로도 감이 안 오기도 했다. 그리고 조사를 가르치다가 제임스가 학을 띄고 도망칠까 봐 일단 먼저 나와 대화가 가능하게만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사를 생략한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처음 언어를 배우던 시기 즈음해서 저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 맘마.” 


물론 이 한 문장이면 다 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사를 아주 어려서 잘 구사했는가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리고 조사 없이도 대화가 생각보다 술술 잘 되긴 하더라.  

(아마 우리가 하는 영어도 이들한테 저 정도로 들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래 봬도 중1부터 지금 이 나이까지 무료 25년 가까이를 영어를 배웠는데도 입에 붙지 않는 상황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조금씩 조사를 가르쳐보려 하겠지만,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절대 결코 조사를 먼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용어를 문법적으로 접근하면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언어의 역할이 소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입부터 열게 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싶었다. 대화가 되나? 그럼 오케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수업 시간이 아닌데 만나게 된 제임스가 보자마자 인사를 하더라. '한국어'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하는데 목소리와 덩치만 빼곤 아이와 같았다.


"저거 엄마 최고 음식."


이날 제임스의 어머니와 함께 베이킹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그런 소리를 했다. 그래 알아 들었다. 뭐랄까 워낙에 큰 덩치와 목소리와는 안 어울리긴 하던데, 차차 나아지겠지. (제임스는 키가 일반인보다도 더 크다. 그러니 그 위화감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긴 하다. 산만한 백인 남자애가 '엄마 최고 음식' 이러는데, 나의 왼쪽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걸 내내 진정시켰다. 칭찬해줘야 해!)


그래서 이 참에 조사를 하나 가르치긴 했다. '의' 


'엄마의 최고 음식'

'엄마 최고의 음식'

'엄마의 최고의 음식'


이 중에 하나로 표현하라고.


그랬더니 '엄마의 최고 음식'이라고 하더라. 그래, 좀 낫다. 그리고 이 참에 하나 더 배우자. 


"Don't say 엄마, say 어머니 please."


엄마는 그래도 좀 그렇잖아? 


Two thums up! 제임스는 진짜 필기도 열심히 하고, 성실한 학생이다.


작가의 이전글 맥심 커피 믹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