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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Mar 13. 2018

팝시클 주세요

내 앞에선 한국어 해라

한국에서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운 것을 뜻하고, 딱딱한 것은 하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빨아먹는 종류는 쭈쭈바라고 했다. 이곳에선 그걸 어찌 부르는지 몰라, 처음에 나는 모두 ice cream이라고 칭했다. 대충 다 알아듣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단어를 살살 배워오더니 하드를 'popsicle'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쭈쭈바는 freezie라고 한다.)


나도 잘 모르는 단어였기 때문에, 찾아보니 브랜드 이름이더라. 마치 한국으로 따지면 '대일밴드'처럼 브랜드 명이 바로 명사화된 케이스더라. 이렇게 브랜드가 명사화된 것으로 대표적인 게 Coke, Sprite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이다가 마시고 싶을 때는 꼭 'Can I get Sprite?'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다 Sprite가 없으면 꼭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Sprite가 없는데, Seven up도 괜찮니?' 내가 원한 건 사이다였기 때문에 아무 상관없이 'Sure'라고 대답해준다.

(여담이지만, 사이다는 칠성사이다가 아무리 봐도 갑이다. 여기 사이다는 모두 소금을 많이 넣어서 달면서 짜다. 짠 사이다는 취향이 아니라서.)


어쨌든 이 popsicle을 애들은 ice cream보다 더 좋아하더라. 이해는 된다. 나도 어려서 고급진 아이스크림보다는 쭉쭉 빨아먹는 쭈쭈바를 훨씬 더 좋아했다. 어린이들 입맛에 딱이니까. 부모 입장에서 알록달록한 색소 범벅의 하드보다야 고급진 아이스크림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나. 그냥 아이 원하는 걸 자주는 아니더라도 사주는 편이다. 자주 먹기엔 좀 설탕 과잉이 걱정된다.


어제 아이와 장을 보면서 하드, 이 나라 말로 popsicle을 사러 돌아다녔다. 늘 하드를 사던 곳이 아니라, 어디 있는지 좀 찾아 헤맸는데, 내가 먼저 하드를 발견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여기 팝시클 있다."


그러자 큰 아이가 나를 휙 돌아보며 정색하더라.


"Mom, that's not 팝시클, that's just Popsicle."


순간, 이 노마가......라는 괘씸함이 훅 올라왔다. 나도 안다. Popsicle! 여기서 '시'발음과 '클' 발음이 미묘하게 다른데, 아이가 내가 그걸 바르게 말 안 했다고 지적질 및 선생 노릇을 하더라. 솔직히 '시'발음은 한국인들이 잘 못하는 발음에 속한다. 여기서 친하게 지내는 현지인이 한국인이 '시'발음을 유독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꽤 잘한다.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발음으로 까인 적은 없다.


어려서 영어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더랬다. 엄마는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워 발음이 남달리 좋으셨다. 그래서 영어 말하기 대회 등의 지도를 대표로 하실 정도셨다. 물론 나도 좀 혼나가며 배웠었더랬다. 그리고 뭐, 레퍼토리대로 유능한 엄마는 딸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학교 대회긴 했지만, 그때는 학교에 학생이 워낙 많았고 나는 영어를 갓 배웠기 때문에 엄마가 자신의 재능을 이어받았다고 엄청 좋아하셨더랬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후? 원래 뭐든 easy come, easy go라고 영어에 흥미를 급 잃은 나는 심히 엇나갔었더랬다. 공부에 잠시 손을 놓았던 것으로 반전 마무리!


어쨌든 영어는 잘 못해도 혀가 채 굳기 전에 배웠던 영어 발음은 꽤 살아있어서 여기서도 캐나다 애들이 꽤 정확하게 발음한다고 칭찬하곤 했다. r과 l이 연달아 붙어있는 심히 난해한 발음 빼고는 어려움을 많이 겪지도 않고. 그런데. 아들이 엄마 앞에서 훈장 노릇을 하니 살짝 열이 났다. 한국어로 말하는 중간에 발음을 꼬아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일단 현장에서는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그냥 두었지만, 집에 와서 잔소리 발사를 했더랬다. 이런 버릇은 그냥 두면 안되기 때문이다. 어려서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부모의 발음을 갖고 놀리며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된다.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춘기에는 종종 부모를 창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디 영어를 가르치려 드냐고 한 소리 하고, 내 앞에서 영어로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


솔직히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알고 한 것은 아니긴 하다. 얘들은 한국서 배운 단어, 컴퓨터나 리모컨 등은 한국식으로 발음한다. 이곳에서 처음 접한 단어들에 한해서 한국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입력이 안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결국 '엄마, 나와봐. 내가 할게' 이럴 확률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또 한편으로 '엄마보다 내가 더 잘해'라는 게 자존감을 주기도 하지만 거만함을 키울 수 있기도 하다. 난 그 꼴 못 보지. 아이는 결국 나에게 사과하고, 한국식 '팝시클'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봐. 뭐 사달라고?"

"팝시클이요."

"그래, 앞으로 popsicle이라고 하면 안 사준다. 팝시클이라고 해."

"네."


Popsicle은 브랜드명이지만 일반 명사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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