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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Mar 10. 2018

울며 날다

너네 좀 시끄럽긴 하다

Snow Geese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로워 보이지 않아 무뎌지고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하얗게 눈처럼 평지를 점령한 흰 기러기 떼들이 또 봄이 오기 전 한차례 휩쓸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사이 빨리도 감흥이 사라진 나 자신을 깨달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생생함과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적응도 망각도 빠르게 하는 존재라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처음의 그것보다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다. 주변에서 한 캐나다인이 Snow geese가 꽤나 문제를 일으킨다고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약간은 편견을 갖고 보게 된 것 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운동장을 가득 메운 새떼들을 보고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다. 가장 친한 한국인 언니의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일하게 한국어로 터놓고 갖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에 무척 감사한다. 물론 한인 커뮤니티가 있지만, 의도와 상황이 적절히 섞여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터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척 바쁜 일정들을 하루하루 소화하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다. 그것보다는 같은 학교에서 늘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사람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수밖에. 한국어에 고픈 우리는 서로 만나서 수다 떨고 이야기 나누기에 정신이 없다. 오늘도 그러했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끼르륵' 함께 큰 소리로 날아오르는 새떼들 때문에 우리 둘 다 살짝 놀랐고, 대화의 흐름도 잠시 끊겼다.


Snow geese의 소리는 소위 떼창이다. 함께 꼭 같은 소리로 울어댄다. 그래서 그 소리의 크기가 대단하다. 쩌렁쩌렁 울려대는 소리에 말을 잠시 멈추어 기다려야 할 정도다.


"쟤네는 안 힘드나?"

"네?"
"항상 날면서 같이 울잖아. 그냥 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날면서 꼭 울어."


생각지 못했는 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얘네들은 앉아있을 때보다 날 때 유독 시끄럽다. 평야를 점거하고 있을 때도 꽤나 소리가 요란하긴 하다. 그래도 적당히 조용히 나름의 안정을 취하는 모습이라 그렇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날아오를 때 유독 크게 운다. 날갯짓 때문이 아니라 날아오르면서 꼭 끼르륵. 분명 이건 목에서 울리는 소리다. 마치 안간힘을 쓰는 듯. 날아오른 게 쉽겠냐마는..... 얘들도 그럴까?


얘네들이 내는 소리는 '영차', '에구구' 쯤 되는 것인가? 아니면 '으랏차', '아자아자!' 정도일까. 함께 날아오르자는 약속일지, 아니면 힘들어서 우는 소리일지 혼자 생각을 이리저리 뻗어나갔다.  어쨌든, 그게 무엇이든 또 한 무리의 새떼들이 후드득 날며 끼르룩 운다.


그래, 너네도 힘이 드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울며 날아오르며, 또 그들이 살 곳을 찾아 날아가는구나.


학교 뒤뜰을 점거중인 Snow geese. 원래 발 디딜틈 없이 들어앉아 있는 편이다. 화면에 찍히지 않은 무리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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