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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Mar 19. 2018

산속 설원 야외 스케이트장

다시 타지는 말자고 하드라

봄이 왔다. 아이들이 Spring break를 맞이해서 놀고 있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 겨울 시즌의 마지막 스키 레슨 신청분을 사용하기로 했다. 실은 이 스키 레슨은 한참 시즌인 기간에 가기 위해 예약을 했던 것인데, 나의 사정으로 미뤄지고 스키장의 실수로 미뤄지고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는 결국 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겨울 스키 마지막 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무언가 묘한 기분이다.


이날 전날까지 아이들이 몸이 좋지 않아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이 나라는 환불도 안되고 교환도 안 되는 희한하게 강력한 자체 규정이 존재하신다. 덕분에 아무리 우기고, 윗사람을 불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 아이들이 낫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도 돈 좀 허투루 쓰지 좀 말아보자. 이 마음이었다. 아파서 방학식날까지도 결석한 애들인데, 나도 좀 어지간하긴 하다. 다행히도 전날부터 아이들이 살아나서 마구 뛰어노는 것을 보고 다음 날 새벽같이 서둘러 스키장으로 향했다. 물론 코를 좀 줄줄 흘리긴 했지만.


Daylight Saving Time이 시작되고 아침부터 해가 엄청 일찍 뜬다. 그리고 밤 8시가 되도록 훤한 하절기도 접어들고 있다. 햇빛도 따사롭고 도무지 스키 레슨이 가능하리라 생각이 되지 않아 스키장을 가기 전 반신반의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왜 3월 중순까지 스키 레슨을 하는 거지?' 

의구심을 갖고 Grouse Mountain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여기보다는 Cypress Mountain이 더 편해서 좋아하긴 하는데, 희한하게 한국인들은 Grouse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바로 운전을 해서 올라가서 Ski spot에 닿을 수 있는 Cypress와는 달리 이곳은 주차를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또 정상까지 가야만 한다. 그 과정이 나는 무척 불편한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언가 매력이 있는가 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레슨이 좋다고도 하던데, 애들 레슨에 그런 게 뭐가 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스키? 타면 되는 거 아니야? (스알못이라고...스키 모르는 1인이라 아무 소리 막 하고 있기는 하다.)


주차를 해두고 케이블카를 다고 올라가는 데 약 11분 정도가 걸린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케이블카는 참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곤 하는데, 올라가면서 봄이 겨울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지난겨울에는 우기라 비가 주룩주룩 오는 주차장에서부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비가 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산에 오르자 갑지가 설원이 펼쳐진 모습에 살짝 감탄했다. 다만 설질은 한창 겨울 때와는 다르게 좋다고 말하기 어렵더라. 눈이 조금씩 녹고 있어서 푹푹 빠지는 다리 때문에 걷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리고 급히 서두르는 통에 스키 장갑과 고글을 놓고 오는 실수를 범하는 통에, 부랴부랴 눈물을 머금고 구매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여러 차례 착용해보고 가자고 한 나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아이들이 저들 손보다도 한참 작은 유아용 장갑을 2쌍을 구매해서 속을 한번 터지게 하고, 나는 다시 교환을 하러 갔다가 뚜껑이 열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자기네 규정상 절대 환불 및 교환이 안된다는 것이다. 10분 전에 산 건데 안되냐고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하다가 궁극의 매직 워딩, '슈퍼바이저 좀 불러주세요'를 시전 했으나 역시 '불행히도.......'로 시작되는 말로 안된다고 단호하게 주장. 짜증이 솟구쳤지만 한발 물러나 알겠다고 나왔다. 안된다는데 무슨 재주 있나. 그냥 나와야지. 대신에 아이들에게 '그냥 맨 손으로 타!'하며 자기 실수를 스스로 책임지게 만들었다. 매정한 엄마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었다. 


스키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이 이곳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 스키장과 함께 있는 스케이트장을 지나는데, 기어이 자기들도 타고 싶다고 하더라. 이게 진짜 직접 보면 참으로 멋있다. 산속 설원에서 스케이트라니! 운치도 있고,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타고 싶어 해서, 아이들 스케이트와 내 것을 빌려서 함께 얼음 위로 들어가 봤다. 소감은......  보는 것이 한 100배 좋다고나 할까? 


야외다 보니, 빙질이 심히 좋지 않았다. 평소 스케이트와 아이스하키를 하며 잘 다듬어진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이 이게 무척 불편했는가 보다. 나도 물론 썩 잘 나가지 않는 스케이트에 재미가 많이 반감되더라. 그것보다는 햇살과 바람과 눈 속 얼음 위에서의 운치가 좋았다. 아이들은 그럭저럭 둘이 신나게 놀고, 서로 시합도 하고 하더라. 그래도 재미있게 노나? 싶었는데, 나오면서 또 우리 큰 아들이 한 마디를 하더라.


"엄마, 다음에는 이거 다시 타지 말자요."


그래, 솔직함이 우리 아들 매력이긴 한데...... 나도 알거든?! 네가 타자고 졸랐잖아! 목까지 나온 이야기를 삼키고 그냥 '빨리 가자.' 하고 들어왔다. 꼭 이럴 때 좀 얄밉다. 나는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고.


눈과 얼음의 조화. 보기는 그럴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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