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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Apr 29. 2018

방부제 미모와 건강식

엄마, 난 그냥 맥도널드

  다친 후, 그래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몸도 조금씩 낫고 있다. 꽤 긴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스스로 생각을 하며 '다 나으면 멋진 인생을 살리라!' 다짐도 좀 하고 나름 다시 사는 기분인 것처럼 굴고 그랬더랬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인생에서 어떠한 사건 사고가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 분들은 잘 생각해 보면 모두 대단한 분들임이 분명하다. 나도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위험했었고 아팠고, 한동안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다시 살기는커녕, 전보다 더 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비루한 현실을 경험 중이다,  쉬어보면 안다. 쉬어도 쉬어도 더 쉬고 싶은 상태가 된다. 만사 귀찮기도 하고.


  어쨌든 그러면서 스스로 '참 못났다' 싶은데, 또 드는 생각이 왜 이리 상처가 잘 낫지 않는 가다. 목, 허리, 골반에 이르기까지 아픈데, 그것 외에도 혈액순환 및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생인손(한의학에서 손가락 끝에 종기가 나서 곪는 병을 일컫는다, 네이버 사전 참고)을 앓고 있다. 그런데 심히 낫지 않는다. 약도 발라보고 하는데, 이게 며칠째인가 싶다.


  한참 일에 빠져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만 하던 당시엔 바쁘다며, 귀찮다며, 요리를 잘 못한다며 방부제 범벅의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때마다 내심 일말의 꺼림칙한 기분을 누르고자, '그래, 방부제 먹으면 좀 천천히 늙겠지. 방부제 미모라는 말도 있잖아?'라는 어디 근본 없는 말을 되뇌며 자기 위안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방부제 꽤나 먹은 것 같은데, 이 방부제들이 나의 미모(?)가 아니라 상처들을 방부처리 하나보다. 한번 상처가 나으면 나을 기미가 없으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천천히 낫는 상처들을 보며, '이건 필히 방부제 탓이다'라는 논리 따위 없는 나만의 결론(나이, 건강 고려 안 함)을 내리고. '지금부터라도 방부제 없는 건강식을 먹겠어!'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사서 햄버거도 손수 만들어 애들과 먹었다. 참고로 햄버거 패티 만들기부터 굽기 등을 직접 해서 먹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 반이 넘는다. 거기에 감자를 깎고 전분기를 뺀 후, 기름을 최대한 줄여 만든 감자튀김도 추가. 치우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냥 부엌에서 내내 있던 것만 같다. 어쨌든 고생 고생해서 애들에게 짜잔 내놓고,

"이게 그 강남에서 먹는 고퀄 햄버거다!"


  큰 소리 쳤더랬다. 하지만 우리 까다로운 입맛의 상전 아들내미들.


"엄마, 그냥 다음부터 맥도널드 먹어요."


  아무리 청담동, 압구정동, 이태원, 홍대 버거. 혹은 쉑쉑이나 인앤아웃 버거와 비슷한 것이라 외쳐도 돌아오는 대답.


'맥도널드가 더 맛있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고생했나, 살짝 욱하는 마음을 눌러 내리고. 그래,  우리 모두 방부제 먹고 너네나 나나 그냥 하던 대로 방부제 미모나 실현해보자. 쿨하게 결론을 내렸다.  몸에 좋은 것이고 뭐고 나도 힘들고 저들도 싫다는데 그냥 편히 살기로. 에라, 모르겠다.



나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간 햄버거와 감자튀김 따위 맥도널드보다 못한 것을, 내가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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