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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Apr 23. 2018

불행 중 행복 발견

다들 날개를 어디에 숨기셨나요?

  몸이 다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캐나다라는 곳은 엄마가 할 일이 정말 많은 곳이다. 우선, 도시락도 싸야 하고 애들 라이드도 해야 하고 바쁘다.  학원 차량 같은 것이 없어서 무조건 엄마가 데려다주고 기다리다가 다시 픽업하고 하는 것이 일상인 곳. 덕분에 목이 다친 후에 허리까지 번지는 통증을 안고는 이를 할 수 있을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일단 커뮤니티 센터에서 듣는 수업은 모조리 생략하기로 했다. 이렇게 다친 것이 너희들 책임이니, 내가 굳이 아픈 몸을 이끌고 너희들 추가 수업까지 챙겨야 하겠니? 하는 마음으로 보이콧. 살짝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또 운전을 하는데, 목이 잘 돌아가지 않으니 어려움이 많았다. 목에 보조장치를 차고 운전을 하면 경찰에 걸려 혼날 수 있다는 말에 아파도 이 악물고 그냥 운전을 하긴 했는데, 학교만 가자. 학교만. 엄마, 힘들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도시락이나 집안일이 심히 걱정이 되더라. '이를 어쩌지?'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등장한 홍콩 친구. 자기가 일주일간 아이들 도시락을 대신 싸주겠단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친구들끼리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야'라고 하더라. 살짝 뭉클함이 일었다. 여기서 만난 홍콩 친구들이 모두 동갑인데, 진짜 뭐랄까 홍콩 영화 속 그 끈끈함이 느껴지며 나도 모르는 홍콩영화 속에서 들었을 법한 말을 하고 싶더라. '쏼라쏼라'. 이휴, 나를 울리다니…… 흑.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인 친구가 나 대신 장을 봐주겠다고 하더라. 번거롭게 하기 싫다며 사양을 하니, 기어이 나의 손에 식사로 데워 먹으라고 만두 등을 포장해서 가져다주더라. 아이, 이 아줌마들이. 또 중국 영화에서 보던 그 끈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중국말로 의리를 논할 뻔했다. '칠협오의' 이런 거. 아, 이건 포청천의 등장인물들인가. 어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에휴. 어쨌든 눈물 좀 닦고.


중국인 친구가 손에 들려준 만두. 진짜 중국만두다!


  또 이번엔 한국인 언니가 애들을 데려다가 저녁 내내 봐주다가 잠자기 직전에 데려다준단다. 이것도 괜찮다고 해도, '이게 정이여'하며 그냥 맡기라고 하더라. 결국 고맙다고 부탁한다고 했다. 우리 가락을 흥얼대며 두레와 품앗이에 대해 읊을 뻔했다. 감동이 넘실대더라. 아이들도 예민해져 있는 엄마를 두고 이모네 집에서 놀다 오니 좋았던 듯 하긴 하더라.  


  현지인 친구도 집에 와서 요리를 해주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는데, 이건 극구 말렸다. 일단 집이 엉망이라 누구를 들일 상황이 아니라서. 그녀의 말에 따르면 'I love to cook'이란다. 그래도 마음만 진짜 감사하게 받겠다고 했다. 항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인데, 마음 씀씀이에 한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글로벌 사랑을 받으며 아픈 와중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건 수확이라고나 할까. 출신 나라도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친구, 우정,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마음만은 같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원래 나는 성격이 좀 차갑고 사람들과 잘 친해지지 않는 편이었다. 낯선 곳에 뚝 떨어지고 나서 그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며 나 스스로를 바꿔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는데 이게 나름 성공적인 편이었구나 그리 느끼게 되었다. 그래, 앞으로 더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고마워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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