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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Apr 30. 2018

스팸을 대하는 자세

반가운 스팸 전화

 이곳에 살다 보니, 의외로 스팸 전화를 많이도 받게 된다. 종류도 가지가지인데, 카드사도 있고 여행사도 있고 때로는 뭔지 모르겠지만 혼자 떠드는 전화도 있다. 가끔은 보이스피싱 내지, 가짜 url로 낚는 경우들이 있는데, 어디나 사기 치는 사람은 다 있구나. 또 하는 짓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전화에 발신자가 찍히는 통에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인지 다들 알 수 있다. 게다가 특별히 핸드폰에 어플을 깔지 않아도 걸린 지역까지 표기가 된다. 또 반대로 자신의 번호를 가리고 전화를 할 수도 있다. 가린 경우엔 ‘private number’라고 뜬다. 현지인 친구 중에는 이 스팸이 싫어서 private number라고 뜬 경우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오는 전화는 그냥 받지 않는다고도 한다. 전화를 받는 데도 통화시간당 비용이 계산되기 때문에 안 받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곧잘 받는다. 이유? '프리 프리토킹'이라는 것 하나로. 광고 목적으로 전화를 건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하게 전화통화를 해주기 때문에 정말 전화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못 알아들어도 다시 10번도 이야기해줄 정도로 지극정성인데, 이 좋은 기회를 피할 이유야 없지 않은가 싶어서. 게다가 스팸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다 나같이 잘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니 기쁜가 보다. 서로 이야기하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미 그전에 하도 외롭고 심심하고 누군가 만나 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부러 콜센터에 전화 걸어서 작은 궁금증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다. 오늘은 월마트, 내일은 코스트코 이런 식으로. ‘세일이 언제냐’, ‘OO 상품 있는가?’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전화영어가 어렵기도 했고, ‘말’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스팸은 그냥 가만히 있다가 누군가와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래서 스팸이 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한 번은 홍콩 친구네 집에서 차를 한잔 하며 그냥 나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스팸 전화! 받아보니 무슨 보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거실로 가서 통화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니, 친구가 물었다.


“무슨 전화야?”

“아, 스팸.”

“엥? 스팸? 근데 왜 받아?”

“이게 얼마나 좋은데. 공짜 영어 회화잖아.”

(참고로 이곳에서도 영어 회화 과외나 학원들을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데, 금액이 꽤 나간다. 과외 같은 경우 1시간당 45불이상이 기본)


  홍콩 친구가 엄지를 ‘척’ 했다. 대단하다며.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일단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건 것부터, 또 스팸 전화와 기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라고.

(실제 캐나다에 살지만, 진짜 생각보다 현지인과 대화가 그리 많지 않은 슬픈 현실인 터라.)


  덕분에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긴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물론 콜센터에 인도 계열 사람들이 많아서, 혹은 인도 외주라서 그런지 꽤 자주 인도 영어를 접하곤 한다. 그때마다 약간 진땀을 뺀다. 내가 아직 인도 영어는 익숙지 않아서. 그렇지만 여기 살면서 인도 영어가 얼마나 메이저 위치에 있는지 깨닫고 나서는 인도 영어도 열심히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실제 인도 영어 리스닝도 크게 향상되긴 했다. 아직 억양이 너무 심하면 좀 헤매긴 하는데, 그래도 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이것은 모두 스팸의 힘이다.  


 고로 외국에서 전화영어 실력향상을 원한다면 정말 스팸 전화와 편히 대화를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어쨌든 결론은,

 

 “스팸, 땡큐!”

 

영국 코미디 Monty Python's Flying Circus에서 시키는 음식마다 스팸을 더 많이 줘서 스팸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던데, 어원이 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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