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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May 06. 2018

포켓몬 카드와 일본뇌염 예방접종

괜히 맞혔나?

  나 어릴 적은 1년에 한 번씩 여름을 앞두고 꼭꼭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4~5살쯤, 주사를 잘못 맞아서 어깨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갖고 있는 나는 지독히도 주사 맞는 것을 싫어했더랬다. 어떻게 하면 주사를 피할 수 있을지 갖은 잔머리를 굴리고 최대한 피해 다니고 했지만, 어쨌든 이놈의 일본뇌염 예방접종만은 피해갈 길이 없었다. 으레 초여름이면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 주사에 몸을 맡겼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 세대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되더라. 어렸을 적 몇 대를 맞으면 그냥 평생 다시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획기적 의료과학의 발달을 접했다. 그리고 첫째는 그 대표적 백신인 일본뇌염 예방 생백신을 접종했다. 그리고 완료가 되어 아무 걱정 없이 무서운 주사 따위 정기적으로 맞지 않아도 되는 후련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둘째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당시 백신 대란(?)이라는 게 일어서 생백신은 동이 났고 사백신만 접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백신은 좀 더 접종 횟수가 많아서 번거롭더라도 맞으러 오라며 날짜도 미리 알려주었었다. 마지막 한방 남았다며. 캐나다에 오기 전에 말이다. 당연 지금 나는 캐나다에 있고 접종을 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구글 캘린더가 알림을 요란히 쏘아 알려주더라.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하러 가라!’


  이 나라는 일본뇌염 예방접종이 필수가 아니더라. 발병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맞지 않아도 된다나? 그래서 아예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모기 없잖아’라는 분위기. 실제 모기가 한국에 비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 말인즉슨, 있긴 있다. 많진 않지만. 게다가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딘 시기가 여름이었는데, 나는 모기 때문에 꽤나 고생했다. ‘윙’하고 날아다니는 소리에 잠을 깨고 물려서 가려워 긁느라 밤새 씨름하곤 했다. 자다가 오밤중에 일어나 모기 소탕을 한답시고 종이를 말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운동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나름 모기에 대한 경계심이 생긴 터라 그냥 넘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여름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가서 맞히면 늦을 것도 같고......)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맞지 않는다는 그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하러 가기로 했다. 이런 접종은 아무데서나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traveler hospital이라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따로 접종하는 장소가 있더라. 아이와 함께 찾아가 접종을 하는데, 예방접종이야 진짜 쉽게 끝난다. 주사 띡. 끝.  


  하지만 아이를 데려가 맞지 않아도 된다는 주사를 놓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싶다.  가기 전부터 귀신같이 눈치챈 둘째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그리고 온 몸으로 거부를 하더라. 절대 갈 수 없다며. (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아이를 끌고 어떻게든 데려가는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 뭐 예상 가능할 거 같다. 다들 의심 어린 눈으로 힐끔힐끔. ‘저 아이 엄마예요. 주사 맞으러 가는 거예요. 아동학대 아님’이라고 써 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감한 상태에서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기로 했다.  


“엄마가 포켓몬 카드 사줄게.”


  다급하게 외치자 뚝 그쳤다. 놀랍게도. 포켓몬 카드의 위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어쨌든 주사를 아주 간단히 놓고 나오며 결제를 막 하려는데, 데스크에서 210불을 내라고 하더라.  


“네? 210불이요? 2 하고 10 맞죠?”

“네, 210불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 포켓몬 카드

  속으로 눈물 찔끔 흘리며 이를 악물고 애써 태연한 척 결제를 했다. 비……비싸다. 혹시 몰라 보험 처리가 되는지 보았더니, 이건 필수 접종이 아니라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텅 빈 지갑을 들고 길을 나섰더니, 이번엔 둘째가 포켓몬 카드를 노래한다. 이런 건 잊어먹지도 않는다. 결국 포켓몬 카드도 손에 쥐어주고, 집으로 돌아와 며칠은 장을 보지 말고 살리라 생각했다.   


  무상 의료긴 한데, 그 범주에 없는 건 무조건 비싸구나 생각이 들더라. 어디나 그렇긴 하려나? 문득 한국의 의료보험이 살짝 그립더라. 하긴 난 여기서 이방인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이방인들도 보험처리가 안 되나? 혹은 일본뇌염 예방 접종하지 말걸 그랬나?'  온갖 잡생각을 하며, 이번 주는 일단 장은 생략. ‘있는 거 먹어라. 얘들아.’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진짜 진짜 만에 하나라는 가정도 있으니, 우리 잘한 걸로 치자. 어쨌든 자기 위안하며 쓰린 속을 달래는 중이다.




 ‘그래도 나...... 잘...... 잘 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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