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고, 그냥 운전해!
캐나다는 연방국가다. 미국처럼 주 단위로 개별적인 행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주마다 다른 법과 규칙을 따로 또 숙지해야만 한다. 내가 사는 리치몬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라는 주에 속해 있다. 줄여서 흔히 BC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밴쿠버인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밴쿠버와 가까운 도시들, 버나비, 리치몬드, 델타, 랭리, 써리, 코퀴틀람 등을 묶어서 매트로 밴쿠버라 일컫는다. 당연히 이곳들은 대체로 같은 법규들이 적용된다. (물론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정책들도 있긴 하다.)
면허에도 주마다 다른 법규들이 적용이 되는데, 다른 곳에서 이사를 왔다면 그 주에 맞게 바꾸거나 새로 취득해야 한다. 나도 면허 취득을 고민했었는데, '이게 웬 떡'인지 한국은 운전면허 교환협정이 캐나다 BC주랑 맺어져 있단다. 한국 면허증만 있으면 그냥 BC주의 면허증을 받을 수 있더라. 그냥 맞교환 같은 개념인데, 내 한국 면허를 제출하고 이곳의 면허증을 발부받는 식이다. 참으로 간편하고 좋은 제도더라. 간단히 면접을 영어로 보긴 하는데, 그 질문도 심히 쉽다. 그리고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 기출문제(?)라고 해야 하나. 많이 공유가 되고 또 된 상태라, 어떤 질문이 나올지가 너무너무 뻔하다. 당연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해도 아주 쉽게 잘도 붙는다. 그래서 손쉽게 난 면허를 따고 룰루랄라 운전을 하고 다녔더랬다.
뿐만 아니라 여행 온 사람들이 단기간은 그냥 한국 면허로도 운전을 하더라. 심지어 한국 면허만 있어도 자동차 렌트도 해준다. 신기한 나라다. 국제면허도 아니고 법규도 잘 모르는데, 그냥 다 된단다. 이곳은 운전면허 따는 것이 좀 쉬운가? 생각 없이 그저 편하구나 하고만 넘겨버렸었다. 그래서 모두가 다 나와 같은 줄 알았다.
하루는 홍콩 친구와 운전면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참으로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왜인고 하니,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좀 더 복잡하더라. 일단 단기 여행객들 같은 경우 중국 면허도 지금은 한국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긴 한데, 기존에는 중국 면허를 제시하면 벌금을 땅땅 때렸다. 중국 면허는 한국 면허처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물론 지금은 된다. 이건 모두 다 내가 사는 리치몬드에서부터 하도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걸렸을 때 중국 면허를 그냥 내밀다 보니, 결국 '안돼, 안돼, 안돼…… 돼!'로 바뀐 케이스더라. 이 동네 경찰인 RCMP랑 운전면허 발급기관인 ICBC랑 이 문제로 한동안 신경전까지 펼치다 지금은 결국 ‘그래, 그냥 다 된다 하라’로 변경되었다고 하더라. 결국 6개월까지는 중국 면허로도 운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BC주의 면허를 우리나라처럼 그냥 바로 아무 거리낌 없이 바꿔주진 않더라. 필기시험도 보고, 실기시험도 보고 단계가 많은가 보더라. 그래서 중국인 친구들이 현지 운전면허를 위해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서로 필기시험 공유도 하고 따로 투자해서 연수도 받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행 연습이 문제인 것 같더라. 중국식 운전을 하면 당연 떨어지기 쉽다. 캐나다식 운전이 익숙해져야 하는데, 원래 운전하던 사람들이 습관 바꾸는 게 아무래도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희한하게 외국인으로서의 운전면허에는 참으로 관대하게 ‘법규 따위 몰라도 돼’라는 듯 그냥 막 운전하게 해주면서 자기네 시험은 진짜 어렵게 만들어놨다. 이게 무슨 역차별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곳에서 면허 따는 것은 꺼려질 정도더라. 일반 캐나다인이 면허를 따려면 우선 필기시험을 보고, 임시면허를 받아 L(Learner) 표시를 달고서도 온갖 이런저런 제약 아래 1년간 도로에서 실제 주행 연습한 다음에, 주행시험을 통과하면 N(Novice)를 달고서 2년간 또 얌전히 문제없이 잘 운전을 해야만 완전한 면허증이 나온다. 쓰면서도 나도 복잡하고 헷갈리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정도로 해두자.
그래서인지 맞교환을 해주는 나라(한국, 일본, 대만,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등)가 아닌 면허로 운전하는 사람들 중 면허를 따지 않고 만료가 되면 다시 본국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수를 쓰는 사람들도 있더라. 소수긴 하지만, 어쨌든 곧 죽어도 면허시험은 안 보겠다며. 어차피 본국으로 갈 날도 되었고, 왔다 갔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시험 보기 진짜 싫은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몇 번 사건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한 번은 4차선 도로에서 정방향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내 앞으로 역주행을 하며 다가오는 아시아인 운전 차량을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그 짧은 순간, '어...... 이곳이 과연 캐나다인가?'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도 있었고. 다행히 바로 앞에서 좌회전을 해서 상가로 들어가긴 했는데,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더라. 또 원래는 깜빡이를 켜면 통상적으로 잘 양보해주곤 했는데, 최근 속도 내어 휙 지나가는 차들 덕분에 사고 위험을 겪기도 했더랬다. 어디든 급한 일 아니면 듣지 못하던 경적 소리를 주차장, 그것도 건물 안 실내 주차장에서 빵빵 울려대는 것을 들으며 눈살이 찌푸리기도 했다.
문득 이곳의 법규도 운전 패턴도 제대로 모르고 막 운전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냥 아무런 조치없이 누구나에게 운전을 허가하다니. 그것도 장기간을 내내 아무렇지 않게. 점점 거주 기간이 늘어날수록 이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에 대해서 우려가 깊어지는 중이다. 게다가 교통법규가 꽤나 다른 면이 있는데 말이다.
이를 테면 U턴은 금지다. 정확히 '완전 금지'라고 명시된 것은 또 아닌데, 그냥 하면 안 된다. 만약 하다 누군가 목격하면 크게 경적을 울릴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게 걸리면, 벌금 내고 혼도 날 수 있다. 또 대체로 비보호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노란색 신호에 하는 편이다. 그래서 노란색 신호에 더 빠르게 넘어가려고 직진해 달리는 운전을 했다가는 바로 사고 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최근에 생긴 새로운 법규인 ‘산만한 운전 금지’ 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건 약간 황당하긴 하지만 진짜 운전 중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조항이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핸드폰을 만지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은 물론이거니와 보험료까지 급상승하는 페널티를 부과받는다. 그래, 이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거 외에도 진짜 아무것도 못 한다. 커피를 마시거나, 스낵을 먹거나, 내비게이션을 만져도 안되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안 된다. 그냥 말 그대로 ‘됐고! 그냥 운전만 해라’다. 모르고 했다고? 캐나다 경찰은 얄짤없다. 바로 벌금 행.
기본적인 법규라도 교육을 하든지, 뭔가 좀 더 대책이 있었으면 하긴 한다. 물론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나는 무시험 면허 교환이라는 큰 혜택을 아주 제대로 받고 있긴 하지만, 나조차도 가끔은 법규를 따로 찾아보거나 물어 물어 아직까지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편하긴 한데, 한편으론 이게 과연 맞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