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같은 아시아가 좀 편하다
지난 5월 13일 일요일은 엄마의 날이었다. Mother’s Day라고 5월 둘째 주 일요일이면 우리나라 어버이날처럼 아이들이 엄마에게 감사 인사도 하고,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 하더라. 그리고 6월 셋째 주는 아빠의 날, Father’s Day다. BC 주에서는 2월 둘째 주 월요일을 가족의 날, Family Day로 정해두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상하다.
“저, 왜 가족의 날,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은 다 있는데 어린이 날은 없나요?”
“아, 그거? 매일이 어린이 날이잖아.” Every day is children’s day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그렇지. 이곳은 아이들의 천국이지. 반면 엄마들에게는? 어디나 육아의 어려움이 없겠냐 싶지만 한국과는 다른 패턴이 있어서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겐 처음 적응의 시간이 꽤 힘들게 느껴졌다. 헤매기도 했고 고민도 많았다. 그 요인들을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이곳은 어린아이들을 혼자 두어선 안 된다. 주마다 조금씩 다른 법이 적용되어 기준이 다르긴 한데, 많게는 만 16세까지도 혼자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리치몬드는 BC주다 보니, 11세 정도라고 하더라. 게다가 법으로 ‘몇 살’을 딱 꼬집어 알려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또 어떨지 모른다. 대체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어디를 가든 부모가 항상 같이 다닌다. 반대로 부모가 어디를 가든 아이들도 꼭꼭 데리고 다닌다. 또 한국처럼 학원차량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무엇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은 무조건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 아이가 두 명 이상이라면? 이러면 더 복잡해진다.
또 급히 오는 바람에 준비를 부실하게 했던 나는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학교에 가면 급식 같은 것도 나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에 가기 전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받은 공문에 ‘도시락’ 및 ‘리세스(recess: 중간에 나가서 노는 시간) 스낵’을 싸오라는 표기를 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싶어서 읽고 또 읽고, 구글 번역기도 돌려보고 검색해보니 맞더라.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나라였다. 이유는 도시락도 가정의 식문화의 하나라 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일관성 있게 배식하기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알레르기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알레르기도 많고, 종교적인 이유로 안 먹는 것도 많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표기를 제대로 안 했다? 큰일 난다.
그런데 여기까진 그럭저럭 점차 익숙해지면서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 사교활동이었다. 학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을 보게 된다. 리치몬드의 대부분의 학교는 정말로 중국인들이 다수다. 우리 아이들 학교는 그래도 다른 학교에 비해 현지인들이 좀 더 많은 편인데, 그래도 반 가까이는 중국계열이다. 중국, 홍콩, 대만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는 또 현지인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현지인들 그룹과 중국계열 이 둘은 대체로 섞임 없이 자기들끼리만 대화를 나눈다. 한편에선 영어로 대화, 한편에선 중국어로 대화. 도무지 낄 공간이 없더라. 차라리 현지인들과 그 밖의 외부인들이 고루고루 섞인 상태라면 조금 더 나았을 것 같은데, 두 메이저 그룹 사이에 나는 딱 외톨이였다. 아마 두 달 넘게 아이를 데리러 가며 그 누구와도 대화를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듯하다. 지독히도 말이 해보고 싶었는데, 자신감도 없었고 비집고 들어갈 틈도 못 찾고 그랬다.
한국도 물론 그렇겠지만, 어린아이들은 부모 간의 사교 관계가 무척 중요하더라. 예를 들어, ‘플레이 데이트’라는 것이 있다. 플레이면 플레이지, 데이트는 또 뭔가? 싶은데, 아이들의 노는 일정은 부모가 약속을 장소와 시간을 잡아서 교류하는 것이더라. 어느 그룹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에게 ‘아이들 플레이 데이트시켜주기’란 거의 미션 임파서블 같았다. ‘꼭 플레이 데이트를 해야 돼?’라고 아이를 설득해보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라 그런 게 그 시기에 또 부러웠나 보다. 결국 용기 내어 친구를 사귀어 보기로 하고, 한 중국인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예상 밖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사람들은 생각보다 한국인인 나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일단 자주 접하는 한국사람이 아닌 데다가 한국에 대한 친숙함도 있고, 한류 영향도 있고 해서 그런지 막상 말을 거니 더 많은 말을 술술 나에게 하더라. 어차피 그쪽이나 나나 모두 짧은 영어 실력인 터라 의사소통 가능한 정도로 쉽고 간단한 영어 대화를 나누었는데, 희한하게 점점 그 중국맘 주변으로 친구 중국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통성명도 하고 서로 소개도 해주고 하게 되었다. 중국맘들은 그간 내가 아이들을 부르고 대화를 나누며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보고 나름 호기심을 갖고 보고 있었던 듯했다. 한번 물꼬를 트자 꼬리에 꼬리를 물듯 점차 중국인들과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대부분의 중국맘들도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있더라.
반면 현지인들은 조금 달랐는데, 말을 건다고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언어의 장벽도 너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고 썩 많이 알고 싶은 눈치가 아니라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나마 평창 동계 올림픽과,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던 밴쿠버 동계 올림픽(리치몬드에 밴쿠버 동계 올림픽 경기장이 있다)을 상기시키면서 대화를 하니 그럭저럭 설명은 가능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중국맘들에 비해서 다가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도 하고, 불편함도 있다.
그래도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부족한 언어로 매번 현지인이든 중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고 어떻게든 아이들과의 플레이 데이트 약속도 잡는다. ‘저 집에 한번 가면 이 집에 한번 온다’는 암묵적인 룰을 위해서 집도 반질반질 닦고, 아이들 놀 거리도 준비하고 익숙해지려 노력 중이다. 이 노력을 하면서 가끔 생각해보는데, 과연 한국에서 이 정도 노력이었으면 ‘학부모 회장’이나 ‘학부모 대표’ 쯤은 했으리라 싶더라. 어렵게 얻는 것이 아닐 때,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잘 몰랐었나 보다. 이제와 조금 반성 중이다.
아쉬운 건 어쨌든 아무 연고 없는 나. 더 먼저 친숙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어쨌든 사람들과 함께 하기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나마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중국맘들이 고맙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아이들이 자랄수록 두드러지는 모습이라고도 하더라. 어려서는 구별 없이 잘 놀다가도 자라면서 조금씩 비슷한 생김새나 인종의 사람들끼리 뭉치고 끼리끼리 갈리는 그룹 문화가 생기는 듯하다. 불화는 없지만, 또 섞이지는 않는다고나 할까? 역시나 모자이크*처럼 멀리서 보면 막연히 아름다워 보이던 것들이 가까이서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또 조금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게 꼭 나쁘다기보다 그냥 좀 다르다.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을 모자이크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