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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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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31. 2018

핫도그, 설탕은 많이 발라주세요.


002. 핫도그


나처럼 초딩-불량식품 입맛의 사람이 후랑크 소세지에 밀가루를 입혀서 튀기고 거기에 설탕을 발라서 케첩을 뿌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인생의 1/4 정도를 분식집 주인으로 살았고, 나 또한 인생의 절반은 분식집 딸로 살았다. 엄마는 겨우 엄지 손가락 만 한 소세지 조각이 들어있는 원형에 가까운 핫도그를 팔았다. 밀가루 반죽이 부분이 너무 두꺼워 작게 입혀서 한 번, 그 위에 또 입혀서 한 번 두번을 튀긴, 그래서 밀가루 반죽 부분을 먹다보면 경계선이 한 번 나오는 그런 핫도그였다. 나는 언제나, 소세지가 먹고싶었다. 밀가루 튀김 부분을 먹는 일은 지루하고,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가짜 빵의 맛이었다. 언젠가 소세지만 먹고 튀김옷을 버린 일이 있다. 나는 상당히 용의주도한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부주의 하게 대충 버렸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결국 튀김옷 부분을 버린 것을 엄마에게 걸렸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라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엄마에게 크게 혼날 것이라고 생각해 미리 엄살을 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저 슬퍼했을 뿐이다. 혼내지 않는 것이 슬퍼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핫도그를 거의 먹지 않았다.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는 동안 다듬고 고치고 만들어온 과정 하나가 끝났다. 실패라면 실패일 것이다. 역시 지난 봄과 여름에는 많은 실패가, 탈락이 있었다. 혼자서도 떨어지고, 친구와도 떨어지고, 동료와도 떨어졌다. 엉망진창이었다. 기회도 돈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난해서 종종 슬펐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보다 자주 웃었기 때문에. “가난을 어떻게 몰라요.” 그런 말들을 하면서. 택도없이 비싼 호텔 카페에 앉아 웃다 웃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오늘도 그랬다. 오늘 찍은 모든 사진의 내 얼굴은 말 그대로 썩어있지만,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그럴 수도 있어서 노래를 했다. 코인 노래방 기계 위에 천원짜리 열장을 올려두고, 25점부터 99점까지 맞으며 노래했다. 기계가 매긴 점수 따위와 상관없이 즐거웠다.


양쪽으로 갈라져야 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놓쳤는데, 눈 앞에 명랑핫도그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명랑핫도그 마니아 친구가 있지. 그에게 보여주겠다며 명랑핫도그를 사먹었다. 모짜렐라 치즈와 햄이 반 씩 들어있는 핫도그를 시켰다. 1800원이었다.


“설탕 발라드릴까요?”


뭐 이런 질문이 다 있어. 네. 많이요. 친구는 설탕을 바르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핫도그 트렌드가 바뀐 건가. 머스터드와 케첩을 뿌리고, 가게 앞에 앉아서 핫도그를 한 입 물었다. 말도 안돼. 이렇게 맛있을수가. 이걸 먹기 위해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무례한 사람 앞에서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 핫도그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제 핫도그를 생각하면 어쩐지 슬퍼지는 일은 없겠어. 그리고 카톡 속의 친구들은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만득이를 먹었어야지. 통모짜를 먹었어야지.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앞으로 통모짜 명랑핫도그에 500원에 감자를 추가하고, 설탕을 많이 발라서 머스타드와 케첩을 발라서 먹을 때까지, 같이 또 잘 지나가보자고.




그림일기 365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 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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