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나 Aug 29. 2018

멜버른, 아이스 커피가 필요할 때

 


001. 멜버른


멜버른은 호주에 커피를 전해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커피 씬이 된 도시다. 나의 이탈리아 소년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건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산한 아침에도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전통을 굳건히 유지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흐름 같은 거지, 전통은 어쩔 수 없는.


멜버른에서도 지점이 몇 개 없는 스타벅스에 갔다. 세계 최고인데도 아이스 커피는 잘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여름을 뭘로 생각하는 건지. 얼음이 잘그랑거리는 블랙 커피(더치가 더 좋지만 에스프레소로 내린다 해도 어쩌겠는가)가 없는 여름이 어떻게 여름일 수 있단 말인지. 아이스 콜드브루 그란데 플리즈. 멜버른의 여름이 지나고, 스트롱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시티의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스타벅스의 탄 맛을 잊어갈 즈음, 부활절 휴가가 시작됐다. 스타벅스만 여니까 스타벅스에 가야했다. 그때 계속 보고 있던 스타벅스 시티 유리병이 할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호주 병에는 캥거루와 울룰루가, 시드니에는 당연히 오페라 하우스가, 브리즈번에는 구불거리는 강과 그 위를 지나는 페리가 그려져있었다. 그러면 멜버른은 대체 뭐야? 트램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도시를 대표하는 특별하게 대단한 건축물이나 관광지가 없다는 것이. 멜버른의 특별함은 멜버른이 그냥 멜버른인 데서 나온다는 것이. 어느 유럽의 도시와, 문화와 비교할 수 있겠지만 그걸 멜버른의 것으로 바꾸고, 뭐 우리가 잘하는 데 어쩔거야 라고 한다는 바로 그 점이. 뭐 됐어, 굳이 유명한 건 없으니까 대중교통이나 그려볼까.


그래서 사왔다. 깨지지 않게 수건에 꽁꽁 싸서, 굳이 들고왔다. 얼음을 넣고 잘그랑대며 차가운 인스턴트 커피를, 야매 칵테일을, 한층을 내려가야 마실 수 있는 차가운 정수기 물을 550ml 병에 채워 마시며, 여름을 보냈다. 남은 음료가 멜버른이라는 글자 쯤 찰랑대는 게 좋았다.


-멜버른은 날씨가 어때?

-아주 춥진 않아. 제일 추웠던 날이 영하 1도였어.

-그렇구나.

-거긴 어때?


음.. 내게만 올해 1월에 시작됐던 여름이, 이제 막 끝났어.



그림일기 365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 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