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모먼트
멜번 시티의 몇몇 영화관에서는 화요일에 영화를 반값에 볼 수 있다. 일반 영화 티켓 값이 한국 아이맥스 3D 주말 가격 정도이기 때문에, 반값이면 딱 한국 티켓 값이다. 역시 오천만 인구의 나라에서 1년에 두세편씩 천만 영화가 나오는 것은 티켓값의 힘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그래서 화요일이면 영화관에 간다. 이건 <셰이프 오프 워터>를 보러 갔던, 2주 전 화요일의 일이다.
여기 와서 결심을 한 일 중 하나는 외모를 보고 상대의 국적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화를 하기 전에도 물론이고, 대화를 하는 중에도 굳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말하지 않기. 특히 아시안으로서 아시안을 국적으로 싸잡아서 판단내리지 말 것. 그런 이유로, 일단은 한국인처럼 보이든 말든 대화의 시작은 영어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영화 티켓을 결제하는 키오스크 앞에 서 있다가 한 여자에게 새치기를 당했을 때 영어로 말을 꺼냈던 것이다. “Excuse me?” 제가 먼저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피한 여자는 다시 내 뒤로 서며 일행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 여자 있잖아. 그냥 쳐다보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리고 대답하는 일행. “뭐래? 영어 써?”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국 분이세요?” 새치기를 했던 여자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먼저 하세요” 했다. 원래 먼저였는데요, 라는 말을 삼키며 티켓을 끊고 돌아서는데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치고 지나간 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키오스크에 얼굴을 박았다. 그가 누른 영화는 <신과 함께>였다. 그래도 그가 한국인일지 아닐지는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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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부딪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