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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18. 2018

언젠가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가 될 것이다

두 프리랜서의 생존 실험 에세이 <둘이 같이 프리랜서> 서문


https://tumblbug.com/freelancertogether

이 글은 헤이메이트의 첫 번째 단행본 <둘이 같이 프리랜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프리랜서 12년 차. 지금까지 해온 온갖 일들을 일단 ‘알바’라는 단어로 묶어 <미쓰윤의 알바일지>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일간지부터 대학생들을 위한 잡지까지 꽤 다양한 매체와 책에 대해 인터뷰를 했고, 독자와의 대화도 했다. 대체로 사회 경력이 없는 독자나 인터뷰이에게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이거였다. “프리랜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언제나 한 박자 쉬며, 남몰래 한 숨을 내쉰 뒤 대답한다. 그러니까, 프리랜서는 되고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는 직업이 아니고 상태거든요. 이렇게 대답하면 상대는 늘 더 긴 대답을 원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사실 더 할 말은 없지만 일단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나의 경우라면 직업은 대충 작가다. 대충 작가인 것은,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이기는 한데 쓰는 글에 따라서 매번 직함을 바꿔서 부르기 때문이다. 작가, 기자, 에디터, 칼럼니스트, 평론가, 자유기고가 등등. 일단 이걸 뭉뚱그려서 대충 작가 정도면 내 직업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과연 프리랜서일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프리랜서일 확률이 높은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반드시 모두 프리랜서인 것은 아니다.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프리랜서인 것도 아니다. 요새는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도 많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프리랜서라는 삶의 상태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프리랜서를 굳이 정의하자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물론 대개 선택되지만), 일상을 스스로 꾸리며, 일과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할 자유가 있고, 대신 모든 선택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 프리랜서의 자유란, 이런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정확히는 긴급 카페인을 투여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정말, 프리랜서가 되고 싶나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난감해질 수밖에.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은 우선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 해당 직종에서 반드시 일해 보라는 말로 시작된다. 최소 3년에서 5년은 일해야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개인으로 독립한 뒤에도 연계된 일을 해나갈 기반이 생긴다. 누군가는 나에게 ‘당신은 회사에 소속된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래서 책을 쓰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워낙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독립의 기반이 없다는 것은 보증금이 없거나 최소인 상태로 높은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수중에 가진 가치, 곧 재능이라든가 얄팍하고 개인적인 인연 등은 통장 잔고처럼 순식간에 바닥나버리고 만다. 물적 인적 자본 없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업계의 평판을 얻고 돈을 버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예술 영역도 그렇다. 이런 생각 없이 덜컥 ‘출퇴근의 자유’를 외치며 프리랜서라는 상태를 택해버리면, 그건 그냥 백수가 되는 길이다. 근근이 들어오는 일로 겨우 월세와 카드값을 막으면 한 달이 지나버린다. 느끼고 있겠지만, 당연히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어떻게든 프리랜서라는 상태의 직업인이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프리랜서다운 생활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소하게는 카페에서 일하기 좋은 자리 찾기라든가 가계부 정리의 기술로부터 종합소득세의 달 5월을 넘어서는 법부터 일을 거절하는 기술이나 건강 챙기기, 억지로라도 휴가 만들기 등의 기술이 없다면 프리랜서의 삶은 마감 때마다 밤을 지새우고, 동틀 때 잠들고 노을과 질 때 눈을 뜨다가 몸이 망가져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이런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시행착오를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비슷한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다가 일에 치여서 뻗어버리거나 일이 없어 굶게 된다. 여기서 굶는다는 것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다. 회사가 직원에게 주는 것은 월급과 업무 환경이다. 거기엔 세금과 보험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환경 조성도 포함되어있다. 프리랜서는 한 달에 카페에서 쓸 돈과 작업실 월세를 비교하는 것부터 시작해 다음 달에 일이 들어오지 않을 것을 대비한 아르바이트까지 챙겨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사소하고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삶이라는 것은, 언제든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최소의 돈을 지불하려 하는 이들을 혈혈단신으로 상대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가 이런 삶을 감히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겠는가? 일단 회사를, 다녀보세요. 어떤 프리랜서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당신은 그의 심연을 아주 잠깐이나마 들여다본 것이다.


역시 일을 미리 끝내지 못하고 이고지고 휴가를 와야 프리랜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가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백수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직장은 적어지고, 자연히 취업은 어렵다. 평생직장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은퇴는 빨라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일은 계속해야만 한다. 로봇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대체하는 날도 머지않은 미래에 올 것이다. 대신 공간의 제약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일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어떤 프리랜서는 노트북 하나, 심지어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도 세계 어디서나 일한다. 적은 수의 직원에게 최대치의 일을 시키려는 회사에서 번아웃 된 사람들은 퇴사를 택하고, 더 좁은 취향의 시장이 각기 다른 크기로 커져가고 있는 상황은 다양한 분야에서 작은 크기의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열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지금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언젠가’를 미리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프리랜서의 삶의 기술을 미리 습득해두는 것은, 언젠가 사용할 기술을 익히는 것과 같은 의미다. 불안을 견디는 근육을 미리미리 길러두시길 바란다. ‘언젠가'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얼마 전 SNS에 ‘프리랜서로서의 삶’이라는 코멘트가 달린 세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첫 번째 사진은 코멘트와 똑같은 제목의 메일이다.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서 짧지 않은 분량의 에세이를 써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다음 메일은 앞선 메일을 받은 프리랜서의 답장이다.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료가 얼마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메일. “안타깝게도 고료는 지급하지 못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만큼 ‘프리랜서의 삶’을 정확히 요약한 텍스트를 본 적이 없다. 자, 이런 순간이 닥쳤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도 나누면 반이 될까?"


이 책은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술과 비법을 알려주는 프리랜서 실용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순간을 미리 겪은 또 다른 프리랜서가 어떻게 행동했고, 이후 무엇을 배워서 홀로 레벨업을 해나갔는지 정도는 슬쩍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게 프리랜서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불안을 기본값으로 두고 매일의 막막함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다. 일을 같이 할 수 있고,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동료.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의 세계로 뛰어든 친구와 함께, 떠들고 놀고 생각을 나누다 같이 무엇이 될지 모를 일을 시작하게 됐다. 각자의 길을 걷다 어느 순간 만난 교차점에서, 우리는 한 번 무모해져 보기로 했다. 이 책은 그 무모함의 첫 결과물이다. 이 책 속에서 자꾸 넘어지지만 일어나 보려는 우리가, 이 불안하고 외롭고 문득 두려워지는 세계에서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미래에서 온 프리랜서인 당신을 환영한다. 안 그래도 우리가 미리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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