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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Sep 19. 2018

어쩌다 퇴사

두 프리랜서의 생존 실험 에세이 <둘이 같이 프리랜서>


https://tumblbug.com/freelancertogether

이 글은 헤이메이트의 첫 번째 단행본 <둘이 같이 프리랜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를 나와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회사에 다닌 지 5년 차에 들어섰을 때부터 슬슬 ‘아, 더는 힘들겠는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세상에 고되지 않은 회사나 일은 없다지만 마감 노동자, 특히 주 단위로 돌아가는 매체에 소속된 마감 노동자의 업무 강도란 상상 이상으로 세다.


월요일. 이번 주에 쓸 기사들을 점검하고 일주일의 취재 및 기사 작성 스케줄을 짠다. 접근이 어려운 취재원이라면 월요일 아침부터 연락을 넣어둬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화요일. 기사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기사를 쓴다. 취재를 한다. 수요일. 미친 듯이 기사를 쓴다. 못다 한 취재를 한다. 목요일. 밤을 새워서라도 맡은 기사들을 전부 완벽하게 마감한 후 편집장님에게 데스킹을 받고 편집팀에 넘겨야 한다. 금요일. 마감이 끝나고 굳어버린 머리로 겨우겨우 다음 주에 쓸 기사의 아이템을 고민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기획 회의를 한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엔….


이런 루틴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경력이 쌓여있는 것이다. 기자로 일한 지 6년 정도 됐다고 하면 “이제 일 좀 편하겠네?”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3년이든 6년이든 10년이든, 경력이 쌓여도 일이 손에 익거나 수월해지거나 업무량이 줄어드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는다. 글 쓰는 일은 소재와 주제와 포맷에 따라 매번 다르다. 쓸 때마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하얀 창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어야 한다. 지금껏 다뤄 왔던 전문 분야가 아닌 것도 종종 기사로 써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3, 4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급하게 공부를 하느라 울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풋은 없고 아웃풋은 점점 많아지는 데다 ‘경력이 있기 때문에’ 퀄리티 유지도 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딴짓하다 시간을 허비하고, 하기 싫다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새벽이 되어 버리는 일은 신입 때나 5년 차 때나 다를 바 없었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두면 어딜 간다고, 월급을 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고 생각하며 꼬박 1년을 더 버텼다.


퇴사 전 마지막으로 쓴 기사는 전소미 씨의 인물론이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회사에 왜 들어왔니? 여기서 최고로 잘돼봐야 편집장님이야.” 입사하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열심히 일해서 경력을 쌓아도 편집장님처럼 언제나 마감에 시달리면서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갓 입사한 신입에게 ‘네가 생각하는 환상의 회사 같은 건 없다’라고 단순히 경고하는, 선배의 그저 그런 폼 잡기일 거라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매우 정확한 예언이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위해 선배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를 환상과 사명감에 젖어있던 신입,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게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으.


뭐, 애초에 부귀영화를 꿈꾸며 들어간 직장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온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마감 스트레스로 매일 밤 뭔가를 먹느라 입사 전보다 몸무게는 10kg 이상 불어났고,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어깨는 이미 돌덩어리로 변한 지 오래였다. 누구를 만나든 앞에서 하품을 수십번 하는 바람에 “진짜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배드민턴을 쳐 본 사람은 안다. 오랜 시간 채를 휘두르며 공을 치다 보면, 나중에는 거의 바닥에 기어 다니는 지경이 되어 공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진다. 퇴사를 결정하기 직전의 내 상태가 딱 그랬다. 아이템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이번 주에 할당된 일을 어떻게든 쳐내자’라는 각오뿐이었다.


한편, ‘TV 프로그램 비평을 주로 쓰는 매체의 기자에게 미래는 있는가?’ 이런 걱정도 있었다.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진지한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인 데다(물론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비평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비평은 전문 인력이라 할 수 있을 기자나 에디터보다 블로거와 SNS 유저들 사이에서 더 자주 나왔다. 온라인 매거진은 물론이고 종이 잡지까지, 매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비평의 시대가 저물어가든 말든,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수첩을 꺼내어 회사에 계속 다녔을 때의 장단점과 하고 싶은 일을 대강 써 내려갔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습니까? 아니요. 더 해보고 싶은 기획이 있나요? 아니요. 기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프로그램 비평을 해나가고 싶습니까? 아닌데요.


회사의 상황이나 시대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내가 여기서 이어가고 싶은 일이 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커리어를 전환할 생각이라면 여기서 한번 점을 찍어주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렇게 어, 어, 하고 끌려가다가 경력‘만’ 쌓은 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바쁜 일과 일 사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프로페셔널 프리랜서가 될 줄 알았지만....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는 상태의 인간


몇 년을 흐지부지하게 끌어온 결정을 내릴 타이밍이었다. 2016년 12월의 마지막 주, 기획 회의가 끝나자마자 팀장 선배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신입 때 나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던 그 선배다)


“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요.”

“…왜?”

“그냥…. 너무 지쳤고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마음은 알겠는데, 좀 더 고민해봐. 회사 밖에 나가면 더 힘들다.”


지옥을 피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밖에 나가니까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프리랜서를 경험해봤거나 계속해서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말이 괜한 엄살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슬프게도 너무나 잘 안다) 모르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이, 소속도 없이, 꼬박꼬박 출퇴근하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오는 월급 없이, 나 자신을 무사히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상냥한 편집장님은 이런 내가 퇴사 여부를 천천히 결정할 수 있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락해주었다.


그 한 달 동안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름대로 객관적이라 할 수 있을 예비 퇴사자의 눈으로 관찰한 회사는 분명 다른 회사들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출근 시간은 평균보다 늦고, 퇴근 시간은 정확했다. 어떤 이슈로 말을 꺼내든 동료들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월급은 많다고 하기 어려웠지만 해가 갈수록 어찌 됐건 오르고는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무실은 내가 사는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유효기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마감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일처럼 느껴졌고, 기사 하나하나도 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대로 계속 다녀도 좋지 않을…. 휴, 넘어갈 뻔했다. 퇴사 의사를 알린 지 꼭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편집장님께 다시 한번 말했다.


“아무래도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더 잘 쓰고 싶지도 않고, 계속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계속 다녔다가는 폐만 끼칠 것 같아요.”

“신입 때부터 봐온 직원이 자기가 뭘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서 회사를 그만두는 건 나로서 보람 있는 일이기는 해요. 그래도 너무 서운하긴 하지만. 회사 그만두고 할 일은 정했어요?”

“(어떡하지…. 아무 생각도 없다고 하면 너무 좀 그런가?) 아, 일본 유학을 가볼까 싶어요.”

“음…. 그래요. 효진 씨 뜻이 그렇다면 더 잡기는 어렵겠네요.”


일본 유학이라니, 정말로 아무 말이었다. 일본어라고는 여행에서 물건을 살 때나 호텔 프런트에서 필요한 말 정도밖에 못 하면서, 그리고 더 공부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일본 유학이란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2017년 2월 말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으로 손에 쥐어 본 목돈 - 퇴직금 - 과 함께. 시원하다기보다는 좀 멍했다. 이제 뭐 하지?


그렇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어찌어찌하다 프리랜서라 쓰고 백수라 읽는 상태의 인간이 된 것이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준비나 비빌 언덕도 없이 일단 회사를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냉철한 자기 분석이나 최소한의 시장 조사 없이 자신의 감에만 의존해서 프리랜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모른 채.



* 캡처를 제외한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unsplash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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