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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Feb 16. 2018

호주 멜버른 도클랜드, 34세 여성.

어디 사세요?

멜버른에 와서 가장 웃겼던 일 중에 하나는 25살 호주인이 번호를 물어본 것이었는데, 정확하게는 그 사건 자체가 웃겼던 건 아니고 이후 상황이 웃겼다. 첫 데이트 전에 연락을 하는데 집이라고 말하는 거리가 계속 바뀌는 것이다. 처음에는 킹스트리트였다가, 그다음에는 주립도서관 옆 건물이었다가, 또 다른 곳이었다가. 여행자가 아니라 멜버른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좀 이상해서 며칠 뒤 만났을 때 물어봤더니 집이... 없었다. 그러니까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같이 살던 집에서 나온 뒤부터 집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딱히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보니까 본드(보통 2주 치에서 4주 치를 미리 지급하는 보증금 개념의 집세. 일반적으로 최대 300불=260~270만 원 정도가 넘어가지 않고 적게는 60~100만 원만 있어도 일단 집을 구할 수 있긴 하다)도 없고 살고 싶은 집도 없고 해서 그냥 내키는 대로 친구들이 구하는 집에 방이 남았을 때 잠깐씩 머물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정말 방이 없는 날에는 한 시간 거리의 멜버른 근교 부모님 댁에 간다고. 그게 말이 돼? 그의 주장에 의하면 말이 당연히 됐다. 멜버른의 많은 젊은 호주인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집세는 비싸고, 현지인이라고 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고(무려 호주에는 상당히 적은 대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놀고 싶기 때문에. 마지막 조건은 물론 말한 사람 개인의 이상한 점이었는데,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고-라는 기분이었다.


이후에도 ‘Own Room’이 없는 호주인을 몇 명 만났다. 백패커에 살며 집을 구하는 중인데 2인 1실을 고려중이라는 유럽에서 온 유학생도 만났다. 라이프스타일 상 독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 같았던 문화권의 사람들도 나만의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었고 그걸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섹스를 포함해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들을 위해 성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공간이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쩌면, 세대의 문제는 아닐까? 그러니까 대충 내 언저리에서 시작해 곧 성인이 될 고등학생 정도까지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유산을 받지 못하고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에 언제나 얹혀살 수밖에 없을 밀레니얼이라고 부르는 세대 말이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우리 세대의 방 이야기를 일단 써 나가보기로 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연 우리 세대가 현재의 소득으로 인간다운 집, 인간다운 방에 살며 인간다운 일상을 영위할 가능성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일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호주 멜버른 도클랜드, 34세 여성.

여행자 비자로 와서 여행도 거주도 아닌 채로 애매하게 살고 있는 윤이나 씨의 경우.


멜버른에서 나는 올해로 10년째 알고 지냈고, 브리즈번에서는 계속 같이 살았던 친구의 집에 살고 있다. 이 친구는 브리즈번에서 멜버른으로 넘어와,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셰어하우스(호주는 독방이 드물고, 보통 룸까지 셰어 한다 : 참고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외국인 노동자 다이어리 5편 )에 살다가 남자 친구와 함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아파트를 렌트했다. 멜버른 시티의 왼쪽 끝인 도클랜드 지역에는 엄청 높은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두 동짜리 아파트 역시 새 아파트로 사실 거주자보다는 레지던스, 에어비앤비 손님이 많은 듯하다. 


누가 봐도 에어비엔비 스타일인 나의 방


여하튼 나는 2* 중 9층, 2 bed 2 bath 아파트에 살고 있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마스터룸을 친구 커플이 사용하고, 에어비엔비 용 방이었던 세컨드 룸을 나 혼자 쓴다. 그래서 책상 없이 퀸 침대만 중앙에 있다. 나는 방과 화장실을 혼자 쓰고, 인터넷 요금 포함 세금을 나누지 않고, 3인만 집에 사는 조건 하에서 4주로 쳤을 때 90만 원 정도의  돈을 낸다. 아파트 한 유닛 전체로 치면 2주에 렌트비만 1225 호주달러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4주 치 월세로 하면 현재 환율 기준 200만 원이 넘는다는 얘기. 내 지인이 살았던 브리즈번의 1 bed 1 bath 아파트는(한국 원룸 개념의 스튜디오가 아니므로 거실과 주방이 방과는 분리되어있다) 주에 500 정도를 냈었다고 하니까 그 아파트의 경우도 160만 원 정도의 월세였던 셈. 


놀랍게도 호주에서 이 정도 월세는 별로 비싼 금액이 아니다. 내가 외국인 셰어에 들어가겠다며 집을 찾다가 포기하고 친구의 제안에 따라 이 집에 머물기로 한 이유는 독방의 경우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도 이보다 주에 30불(2만 6천 원) 정도 적은 수준에 세금을 따로 내고 방의 컨디션은 훨씬 나빠지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원래 내가 예상한 독방 가격은 200~230불이었는데, 택도 없었다. 오지(호주인)들의 상황은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시드니에서 살다왔다는 호주인에게 물어봤더니 내가 사는 지역과 방의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현재 집세는 리즈너블 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드니는 더 비싸다고 한다. 


프리 트램의 종점이고 바로 앞이 Victiria Hobor. 강가의 도서관에서 찍은 아파트 전경


호주에서는 현지인이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나 학생비자로 온 외국인이고 할 것 없이 커플인 경우 동거를 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유는 심플하게 집값 때문이다. 대신 최저임금이 높은 편.(18.29불. 현재 환율로 대충 15,000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월세가 그 이상으로 비싼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환율도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호주의 아파트는 보통 헬스장과 수영장이 딸려있어 상시 이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긴 한데 당연히 이 장점이 두 배 정도 되는 월세를 상쇄 할리는 만무하다. 그냥 월세가 매우, 상당히, 많이 비싸다는 얘기. 특히 나의 경우는 현지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의 높은 시급을 적용받는 수입이 없는데다 한국에서의 수입은 반토막 난 상황이므로 사실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는 셈이고, 이렇게 갑자기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돈 계산이야말로 현실 직면을 위한 가장 빠르고 강렬한 방법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갑자기 너무 직면하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여하튼 지금 내가 느끼는 감각으로는 한국의 서울에서 내가 이 정도 컨디션의 집에 산다고 한다면(친구 커플이 사는 방이 없다고 치고, 거실과 주방의 크기를 조금 줄인다고 할 때) 1000/80만 원 정도의 방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증금이 2000만 원이라면 방 2개짜리 빌라라고 했을 때 월세 70만 원 선.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정비용을 그만큼 내면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사람사는 수준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이전처럼 누군가와 방 2개 이상의 집에 같이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면 사이즈를 완전히 줄여 월세도 줄이고 혼자 산다는 장점이 있는 혼자 잠 잘 공간망 있는 풀옵션 원룸으로 가는 것. 서울에 산다고 할 때 과연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이 선택지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세계 어느 도시의, 어떤 공간에 머무를 수 있을까? 그곳에 머무르면서 계속 돈을 벌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라는 인간의 1인분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 너무 멀리 떠나와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면 수영을 하거나 강가를 달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침대에라도 누워본다. 퀸 사이즈 침대에 누우면 노을이 보이는 삶 잠시라도 살아 보겠다는데, 왜 뭐 왜. 

 해가 8시 넘어서 저무는 멜버른의 여름



어디 사세요?

지금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집, 혹은 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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