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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Feb 08. 2018

이건 멜버른에서의 요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이 추워서

8th, February. 2018 / Cloudy


요가를 시작했다. 원래 오기 전에는 어쩐지 밋업으로 그냥 잔디밭에서 하는 요가를 상상했었는데(그래서 요가 매트를 샀는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여기도 요가 스튜디오가 있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선택했다. 친절한 블로거가 멜버른의 요가 스튜디오는 트라이얼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우선 시티 한 중간의 요가 스튜디오에 14일 트라이얼을 등록했다. 35불, 그러니까 대충 지금 환율로 3만 1천 원 정도로 14일 간 무제한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원한다면 하루 두 번, 세 번을 들어도 된다. 처음에는 오전 오후 두 번 가면 어떨까 하는 택도 없는 생각을 했는데, 한 번 듣고 바로 포기했다. 운동 강도가 워낙 세서 연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WomanKind #12

요가를 시작한 지 나흘 째인 오늘, 카페에 갔다가 흥미로운 칼럼 하나를 봤다. 호주 <우먼 카인드>에 실린 ‘Has yoga lost its balance?’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부제는 무려 ‘요가 산업의 거품’이었는데, 뭐... 그래 거품.. 뭐 그럴 수는 있겠지. 여하튼 글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너무 많은 수의 서양인들이 요가를 하고 있고 그게 요가의 요가 다움(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인도인이 해야 요가인가?)을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예시 중 하나는 번 아웃되어 자신을 찾아보고자 인도에 갔다가 요가 클래스를 들었는데 요가 선생님들이 다 ‘젊은’ ‘서양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그런 상황이 인도를 포함해 발리라든가 그 외 서양인들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러’(Ewwww) 떠나는 몇몇 아시아 지역의 경제라든가 문화를 망치고 있는 지점은 분명히 지적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나이가 많은’ ‘인도인’ ‘남자’ 요기가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해방으로서가 아니라 건강과 미용을 위해 요가를 한다. 이는 영적이고 자선적인 활동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 이 문장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는데, 요가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요가를 몇 대의 업으로 삼으며 심신을 단련하며 기도의 일부라고 믿고 있는 극소수의 요기가 아니라면, 요가는 그냥, 운동이다.


요가는 운동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다이어트 강박이 심해서 스무 살 이후로 운동을 거의 쉬지 않았다. 꾸준히 한 운동은 적지만 여하튼 이것저것 많이 했다. 20대 초반에는 재즈 댄스, 방송 댄스 같은 춤을 운동삼아 했고, 띄엄띄엄하기 싫다고 노래를 하면서도 헬스를 했고, 브리즈번을 다녀와 얼마 동안은 크로스핏을 했고, 작년에는 몇 달간 그룹 필라테스도 다녔다. 2016년에는 수영을 배웠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요가를 처음 접한 건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등록한 반년을 억지로 채우며 다녔다. 지루했고, 느렸고, 나아진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내가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에 맞는지 전혀 모를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 요가원의 스타일은 보통 테라피나 메디테이션이라고 하는 요가가 중심이었던 거 같은데, 느리고 정적인 운동이 성정과 워낙 안 맞다 보니 그냥 요가는 무조건 지루한 운동이라고 여기게 된 거다. 그리고 당시 요가 선생님은 거의 타령으로 느껴질 만큼 ‘영혼... 내 안의 나를 깨우기... 마음으로 서기...’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 배로 지루했다. 저는 운동을 하러 왔습니다, 운동을 좀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달까. 재작년에 친구가 다니던 합정의 요가 스튜디오에 등록하고 다녀본 뒤에야 요가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다시 경험한 요가는 너무나 운동이었다. 아쉬탕가를 한 세트 해보면 알게 된다. 요가 동작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근력, 균형감각, 유연성 모든 것이 필요하고, 요가를 반복하는 건 그 모든 감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요가는 내가 해 본 모든 운동 중, 가장 하체비만 체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나에게 이건 정말 결정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멜버른에서도 나는 다른 운동이 아니라 요가를 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리도 당연하게도 멜버른의 요가도 그냥 운동이다. “오늘도 반갑습니다, 잘해봅시다.” 그런 인사를 한 뒤 38도 스튜디오에서 땀을 후드득 흘리며 빈야사 플로우의 동작을 변형하며 반복한다. 어떤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팔의 근력이, 또 어떤 동작을 위해서는 관절의 유연함이, 또 어떤 동작을 위해서는 몸 전체의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당연히 더 어려운 어떤 동작을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필요하다. 요가를 하는 동안은 그 생각만 한다. 굳이 요가에 정신적인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 정도다.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의 가치. 하지만 이건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운동이든 집중하면 생각이 사라지고,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만 중요한 순간이 온다. 나는 그게 운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오직 그 감각 덕분에 지나갈 수 있었던 어떤 시절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위해 달리던 밤들과, 하계 훈련처럼 수영을 하던 여름과, 영하의 온도에도 요가 스튜디오에 갔던 겨울이. 매일매일 정직하게 좋아지고, 근육통으로 인해 아프고, 다시 나아지던 몸의 감각이 아니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불면의 밤들이.


아울렛에서 산 물병은 3불. 대충 2700원


그래서 나는 요가를 한다. 아시아에 근원을 둔 문화만 보면 영혼의 호흡이니 해방이니 내면의 자유로움이니 하는 것들을 찾으려는 몇몇 서양인들에게 진저리를 내면서도 물병을 들고 운동복을 챙겨 스튜디오에 간다. 그들 중에 누군가가 거기서 영적 만족을 찾거나 말거나, 나는 옆의 남자가 차투랑가를 할 때 팔로만 푸시업을 하며 내려가는 걸 보고 감탄하고, 팔과 어깨 근육을 더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육십도 넘은 것 같은 또 다른 남자를 보면서, 오래 운동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근력을 요구하는 동작이 더 많은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어제는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동작을 했는데, 왼쪽 다리로는 서지 못했고 오른쪽 다리로는 섰다. 그럴 때면 두 다리의 균형이 맞추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까마귀 자세(Crow Pose)를 하면서 한쪽 발을 들었는데, 이걸 해내고 돌아가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또 스포츠 브라만 하고 요가할 수 있는 점은 멜버른이 좋은 거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래도 합정 쿨라의 사라 쌤, 엘레나 쌤, 엘리 쌤이 그립다고, 지금 그 학원에서 열심히 몸을 구기고 펴고 늘리고 근육을 깨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곤 하는 친구들이 그립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지나가는 한 시간을 정말 좋아한다.


비록 그 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얼굴이 심각하게 흙빛이 되어 같이 사는 친구에게 “언니, 무슨 일 있었어요?”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한국이 추워서

한국의 겨울이 싫어서 호주의 여름을 찾아 대책 없이 떠나온 사람의 멜버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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