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커튼
나에게 집을 집으로 느껴지게 하는 감각을 주는 건, 커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살면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커튼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에서 블라인드를 썼다. 커튼이라고 하기 어려운 천을 대충 대 놓고 살았던 적도 있다. 옥탑방에 살 때였다. 언젠가 친구네 갔을 때 얇은 흰색의 반 레이스 커튼에 암막 커튼까지 이중으로 커튼을 달아둔 것을 보았다. 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커튼봉을 이중으로 달고서야 가질 수 있는 것. 임시라면, 커튼에는 정말 도무지 돈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거의 하루 종일 이케아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이걸 넣고 저걸 넣고 다시 빼고 또 넣고를 반복했다. 물론 이번에도 임시야, 임시인데. 당당하게 “불안도 나누면 반이 될까?” 물어놓고 거의 생애 가장 불안한 구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단 품절이 풀린 이케아 레이스 커튼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커튼봉 설치 못하면 뭐, 압정으로 박아서라도 고정시키면 되니까. 거기,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다음은? 그런 질문을 몇 번이나 받는다. 글쎄요. 계획은 있지만, 그 계획대로 삶이 흘러가 본 적이 없어서요. 6개월 뒤에, 제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때도 글을 쓸까요? 달리기를 할까요? 책이 나왔을까요?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살아갈만하군, 하고 생각할까요?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