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Christmas, Brisbane.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예상치도 않았던 이별이라 적응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였다. 게다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 더더욱 얼떨떨했다. 내리쬐는 호주의 햇살 아래 트리는 어찌나 덥고 초라해보였는지. 크리스마스가 여름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헤어졌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한국은 영하 10도에 육박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크리스마스 이브는 공휴일이 아니므로 당연히 닭공장으로 오후 출근을 해서 크리스마스 특별 텐더를 양념하고 있어야한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래도 이브 아이가. 일찍 끝내주지 않겠나.” 부산 출신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가 클럽용 드레스를 꼭 챙겨오라고 당부를 했다. 과연 그럴까. 피도 눈물도 없는 팀 리더는 예정 퇴근 시간보다 겨우 한시간 당겨 외국인 노동자인 우리를 보내주었다. 미친듯이 달려 마지막 기차를 잡아타고 브리즈번 시티의 클럽에서 춤을 추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언제 그의 전화가 올지 모른다며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춤을 췄다. 역시 돌이켜보니 한심하기 짝이없다. 연애의 뒤끝은 클럽 바닥에 흩뿌려진 술의 흔적처럼 끈적하게 남아 달라붙었다. 크리스마스 점심 쯤 일어나 룸메이트와 산책을 갔다. 가장 좋아했던 공원에 갔더니 배낭여행객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붙이면 좋을 만 한 사진을 찍었다. 얼마 뒤, 남자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사진을 보여주니 호스텔에 함께 머물렀던 친구들이라고 했다. “네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내 말에 네가 다시 물었다. “이 사진에?” 아니, 낯설었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내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대답하기도 전에 우리는 또 헤어졌고, 오직 이 사진만이 남았다. 네가 없어서 다행인 사진으로.
W 12월 호에 타국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쓴 글.
분량 문제로 앞 부분이 약간 잘리고, 사진이 실리지 않아서 사진을 올릴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