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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23. 2018

2013, Christmas, Brisbane.


2013, Christmas, Brisbane.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예상치도 않았던 이별이라 적응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였다. 게다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 더더욱 얼떨떨했다. 내리쬐는 호주의 햇살 아래 트리는 어찌나 덥고 초라해보였는지. 크리스마스가 여름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헤어졌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한국은 영하 10도에 육박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크리스마스 이브는 공휴일이 아니므로 당연히 닭공장으로 오후 출근을 해서 크리스마스 특별 텐더를 양념하고 있어야한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래도 이브 아이가. 일찍 끝내주지 않겠나.” 부산 출신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가 클럽용 드레스를 꼭 챙겨오라고 당부를 했다. 과연 그럴까. 피도 눈물도 없는 팀 리더는 예정 퇴근 시간보다 겨우 한시간 당겨 외국인 노동자인 우리를 보내주었다. 미친듯이 달려 마지막 기차를 잡아타고 브리즈번 시티의 클럽에서 춤을 추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언제 그의 전화가 올지 모른다며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춤을 췄다. 역시 돌이켜보니 한심하기 짝이없다. 연애의 뒤끝은 클럽 바닥에 흩뿌려진 술의 흔적처럼 끈적하게 남아 달라붙었다. 크리스마스 점심 쯤 일어나 룸메이트와 산책을 갔다. 가장 좋아했던 공원에 갔더니 배낭여행객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붙이면 좋을 만 한 사진을 찍었다. 얼마 뒤, 남자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사진을 보여주니 호스텔에 함께 머물렀던 친구들이라고 했다. “네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내 말에 네가 다시 물었다. “이 사진에?” 아니, 낯설었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내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대답하기도 전에 우리는 또 헤어졌고, 오직 이 사진만이 남았다. 네가 없어서 다행인 사진으로.



W 12월 호에 타국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쓴 글. 

분량 문제로 앞 부분이 약간 잘리고, 사진이 실리지 않아서 사진을 올릴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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