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나 Mar 01. 2019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까?

생리와 호르몬, 가슴 통증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나는 10년 전 가슴, 더 정확히 지칭할 수 있는 단어로 말하자면 유방에서 섬유선종을 떼는 수술을 받았다. 섬유선종이 무엇인지, 섬유낭종과 어떻게 다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기억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작은 고무공과 같은 것이 왼쪽 가슴 바깥쪽에서 만져졌고, 당시 살던 동네의 여성병원에서는 그 덩어리를 종양이라고 불렀으며 듣자마자 정말 불길한 단어라고 생각했다는 것뿐이다. 그 종양이 양성인지 음성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직검사를 했다.  끝은 조금 바늘이 두꺼운 주사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본체가 연결된 기계가 가슴 옆을 뚫었고, 국소마취로 눈을 멀뚱히 뜨고 있던 나는 멀리서 아기가 태어나는 소리, 실제로는 그냥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꽤 오래도록 듣고 있어야 했다. 침대에 모로 누워있던 난 마취 때문에 오른쪽 등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였고 간호사가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을 때 피 웅덩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후 지혈을 위해 며칠 동안 가슴에 압박붕대를 두르고 다녔다. 조직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다행히도. 병원을 옮겼고, 새 병원에서는 종양의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구멍을 뚫어 종양을 갈아서 긁어내는 신기술을 쓸 수 없으니 절개로 수술하자고 했다. 선택권이 없는 것 아닌가요? 절개 자국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게 싫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나는 싫지도 않았고,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나를 대신해 독립 3년 만에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된 딸의 병원에 온 아빠가, 딸이 가슴을 잃게 될까 봐 무서워해주었다. 그게 무서워 엄마에게만 몰래 물어본 게 정말 웃겼지만, 웃기엔 아빠가 아무래도 너무 진지하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딸은 죽지도 않을 것이며 가슴을 잃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별일은 아니었던 수술은 금방 끝났다. 이후의 기억은 별로 없다. 얼마 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나면 그 시기를 까맣게 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 유두 바깥쪽에 원을 반쪽으로 자른 듯한 선을 남긴 수술의 전후, 화곡의 옥탑에 살았던 마지막 1년에 대해 내가 별다른 기억이 없는 것을 생각했다.


기억보다는 통증이 선명하다. 이후로 모든 스트레스는 왼쪽 가슴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심장이 아니라 가슴 안쪽의 종양이 사라진 자리 즈음 어딘가로 왔다. 때로 통증은 너무 강렬해서 여기에는 분명하게 아주 나쁜 문제가 있고 그러니 당장이라도 병원에 달려가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몇 차례의 통증을 통해 나는 왼쪽 가슴의 통증이 호르몬, 그러니까 생리 주기와 상관이 있는 경우가 있고, 그 외에도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PMS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내 몸과 마음의 어떤 증상들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한 친구는 어느 쪽 나팔관으로 배란이 되는지 안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 나는 인간이 그 정도로 예민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기분 탓’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좌우 중 어느 쪽에서 배란이 되는지 뿐만 아니라 배란통이 있는 날을 기준으로 해서 다음 생리 시작이 빨라질지 아닐지까지도 알게 되는 예민보스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 나는 세 종류의 생리 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세 종류의 앱이 각기 알려주는 배란일과 증상을 체크하고, PMS 증상을 기록하면서 나는 나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고 몸이 또 어떻게 변하는지를 확인한다. 언제 불면증이 찾아오는지, 언제 대하가 많이 나오고 또 언제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지, 이번 배란통의 방식은 어땠는지 혹은 더하고 덜했는지, 몸무게가 언제 늘어나고 몸이 언제부터 붓고 언제부터 생리컵을 사용했고 몇번이나 바꿨는지를 기록하고 추이를 지켜본다.


예상 배란 하루 전인 오늘의 증상


내가 이런 귀찮은 일을 하는 이유는 일단 주기에 따른 몸의 상태변화를 기록해서 현재 내 몸과 기분의 상태를 만든 게 무엇인지를 확인함으로써 ‘이유 없는 짜증’ 같은 것으로 일상과 일을 망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에 <둘이 같이 프리랜서>라는 책을 내면서 ‘프리랜서 체크리스트’를 만든 일이 있다. 프리랜서인 당신, 어쩐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나요? 그렇다면 체크해봅시다. 샤워는 했나요? 커피는 마셨나요? 탄수화물은 충분하게 섭취했나요? 잠은 충분히 잤나요? 보통 원인은 이 네 가지 질문에 답하다 보면 나오게 되어있다. 그게 아니라면 마감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리 주기에 따라서 몸상태를 기록하다 보면 패턴을 발견하게 되고, 호르몬에 따른 몸과 마음의 변화도 확인해볼 수 있다. 몸이 무거워지고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하는 데다가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평소라면 별 거 아닐 일이 신경을 긁는 식으로 특별히 엉망진창이 되는 PMS구간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배란통이 심한 달은 생리통도 심하다든가, 배란기에 가슴통증이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하면서 점차 피로해졌다. 딱히 고통을 낫게 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리통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되었고, 나 스스로도 임상시험을 거친 해결 방안이 있다. 일회용 생리대-천 생리대-탐폰-생리컵을 거쳐오면서 점차 생리기간 발진이 없어졌고, 덱시부프로펜 성분의 진통제를 생리 전에 미리 먹으면 생리통 중에 배를 찌르는 듯한 고통은 확실히 나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생리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먹다가 나흘 동안 매일 진통제를 먹는 식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생리를 하는 것 자체에서 비롯된 하복부 전체를 뭉근하게 짓누르는 생리통은 약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두 달에 한 번은 심한 배란통이 있는데 진통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증상이 모조리 찾아오는 PMS는 그냥, 견디는 것이다. 나는 PMS 때 언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멜버른에 있을 때 남의 말을 쓰느라고 알게 되었고, 그 격차로 인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말 그대로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별다른 해결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슴통증은 여전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일이 있을 때,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마감을 할 때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종종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가슴을 끌어안은 채로 모든 고통이 지나가게 되기를 바랄 만큼 아팠다.


가슴통증이 더 큰 문제가 된 건 불안과 만나면서였다. 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 내가 받는 정기 검진은 홀수 해에 나라에서 해주는 자궁경부암 무료검진뿐이다. 언제나 그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3년 전 여름, 첫 책을 낸 기념으로 대학병원에서 전체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 자잘하고 심각하지는 않은 질환 몇개가 발견되었지만 가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처럼 수술을 한 경우, 특히 부인과 관련 시술을 받은 경우는 1년에 한 번은 유방 초음파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진을 받지 않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했다. 샤워를 하면서 깔짝대는 유방암 자가검진 같은 걸로는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일이 아니길 바랐고, 아무 일이라 해도 확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검진을 미뤘다. 아무래도 PMS일 때 더 심한 것 같고, 이건 주기적인 통증이니까 괜찮을 거야. 오히려 비주기적인 통증이 더 나쁘다고 했어. 한쪽만 아픈 건 위험 신호일 수 있고 내가 왼쪽이 좀 더 아픈 건 사실이지만 오른쪽이 아플 때도 아주 가끔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심하게 아플 때면 가슴 통증과 관련된 온갖 검색어를 검색창에 넣었고 그러고 있다 보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유방통증’이 오르는 건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리통을 위한 덱시부프로펜 알약은 미리미리 준비합시다


결국 검진을 받기로 한 건 피임약 때문이었다. 방콕 여행 전 주기부터 먹기 시작한 피임약 부작용인지 통증이 아무 때나, 극심하게 찾아왔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약을 끊었는데도 통증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아, 아파’ 하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산부인과에 가서 영상의학과를 소개받고, 예약을 해서 찾아갔다. 전날까지도 ‘어제부터는 좀 덜 아픈 거 같은데 안 가도 되는 게 아닐까’하는 한심한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에게 혼났지만 어쨌든 갔다. 결론만 말하자면, 별 일은 아니었다. 왼쪽 가슴에서 또 작은 덩어리가 발견이 되었지만, 내가 떼어냈던 종양에 비한다면 지름이 1/10 정도로 작고 모양이 양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떼어낼 필요는 없으며 추적 검사를 하면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얘기는 앞으로도 반년에 한 번씩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비싼 유방초음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일단 별 문제가 없다니 안심이었다. 안심에 비용을 지불한 셈이었다. 무료로 갑상선 검사를 해주고 갑상선이 깨끗하다는, 곧 작가들의 고질병인 갑상선 질환이 없다는 고마운 소식까지 들려준 여자 의사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더 궁금한 건 없나요?” 물론 있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왼쪽 가슴의 통증은 어떻게 하나요? 검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그 통증은 그냥 상상에서 온 것인가요? 호르몬 문제라면,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해결책은 뭐가 있을까요? 선생님은 조금 곤란한,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흔한 ‘스트레스를 줄이시고 카페인 섭취를 줄이시고 물을 많이 드시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호르몬 때문일 가능성이 높고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좀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그 전날까지 일 때문에 생리와 관련한 책을 읽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여성의 몸에 대해서, 특히 생리를 중심으로 한 호르몬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모든 과정을 오직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일련의 과정으로만 설명하느라고,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서 여성 개인이 매달, 혹은 더 잦게 주기적 비주기적으로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 일상에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을까?


어제 다시 한번 왼쪽 가슴이 아팠고,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없을지를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이게 가능한 일인가?), 카페인을 줄이는(불가능하지는 않다. 내가 중독자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해결책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서 출발한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죽을병이거나, 생명이 탄생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고 해도, 조금씩 망가지고 성능이 나빠진다고 해도 평생을 다스려가면서 써야 하는 이 몸에 대해서. 여성의 몸을 일상에서 제대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기 위해서, 그걸 위한 섹스를 하고자 몸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연구 말고, 그러한 연유로 호르몬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현대 과학으로 컨트롤하면서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연구.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다음 통증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생각할 것이다. 당분간은 커피를 하루 한 잔만 마시긴 할 테지만.


작가의 이전글 2013, Christmas, Brisban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