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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02. 2019

어쩌다 하남의 딸

밀레니얼을 위한 용기 고취 에세이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저의 두 번째 책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제가 브런치에 처음으로 썼던 글인 '엄마, 나를 좋아하긴 해?'의 시절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 노마드의 삶이라는 걸 실험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서울을 떠나와 잠시의 유예 속에서 나 자신의 좌표를 파악하던 때, '도대체 나는 어쩌다 내가 되었나?'를 매일 곱씹으면서 저를 둘러싼 사회와 환경, 내가 속한 세대와 그 안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멜버른에서 서울로 돌아온 뒤 기획을 구체화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또 다시 쓰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 일년 반의 시간 동안, 저는 꽤 자주 '미래'라는 말과, '태도'라는 단어,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그 단어어들이 서로 손을 붙잡고 책의 제목이 되었고요. 


아래의 글은 책의 세 번째 챕터인 '어쩌다 하남의 딸'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 편집한 것입니다. 에세이이면서 한국사회비평/칼럼 이라는 또 다른 분류로도 묶여 있는 이 책의 성격을 볼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아 공개합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책의 일부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저에게는 또 한 명의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올 수 있기를! 



잠실. 영화 〈버블 패밀리〉속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버블 패밀리〉의 가족이 살고 있는 잠실에서 쭉 동쪽으로, 올림픽공원을 지나 스산한 산길로 진입해서 이성산성이니 낚시터니 하는 이미 서울이 아닌 걸 알 수 있는 정류장 이름을 들으며 한참 가다 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작은 도시가 하남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때만 해도 정말로 논밭 천지였던 하남에 아파트가 눈에 띄게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이었다. 나는 당시 새로 생긴 아파트촌의 신설 중학교로 배정이 되었고 겨우 2차선 도로가 만나는 사거리가 중심인 구도심 근처에서부터 중학교까지 걸어서, 가끔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아파트가 생기기 전까지 하남은 그냥 아주 단순하게 가난한 동네였다. IMF 이전까지는 중산층 이상 수준에서 성장한 마민지 감독과 달리, 나는 버블의 수혜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보편의 가난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부동산을 애초에 가진 적도 없고 가질 기회도 얻지 못한 부모 아래에서, 비슷한 경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버블의 힘이 미치지 않은 것이다. 단칸방에서 무허가 건축물이나마 방이 두 칸인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변화이고 성장인 동네였다. 


IMF가 터지고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가 들려온 중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방이 세 칸인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IMF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것은 부모님 두 분 다 잘릴 위험이 큰 회사 대신 장사,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IMF라는 지진의 진앙은 서울, 중산층을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흔든 것 같았다. 여진은 길었고 지역과 계급에 따라 시차를 두고 천천히 퍼져나갔다. 커다란 진동을 느끼기에는 먼 자리에 자신의 좌표가 놓인 사람들일수록 언제 흔들릴지 몰라 걸음을 내딛기 불안한 땅에 살게 됐다. 나와 나의 가족 역시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하남의 딸


그리고 지금의 하남이다. 롯데월드와 가건물, 당시의 잠실과 하남, 조금 멀리 가서 서울과 지방, 지방 대도시와 소도시, 그 경제적 격차를 말 그대로 눈으로 보고 충격에 빠졌던 여덟 살 아이는 이제 마흔을 목전에 두었다. 하남은 더 이상 그 시절의 하남이 아니다. 대학 신입생 때 하남에 산다고 하면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잠실 옆’이거나 ‘천호동 옆’이라는 식으로 대충 설명하고 말아야 했던 그 하남이 이제는 스타필드의 하남, 미사지구의 하남, 신도시의 하남이 됐다. 최근 2년 사이 인구 7만 명이 급증했고,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로또 아파트가 아직 남아 있는 바로 그 하남이다. 몇 십 년 전의 잠실 정도는 아닐지라도 부동산 투자와 아파트로 돈을 벌 수 있는 희망이 남아 있는 수도권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하남이 떠오른 것이다. 


그사이 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하남에 살던 20대 초반 시절에 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댄 바람에 어쩌다 하남의 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하남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이나 하남을 이상하게 들뜬 분위기로 만들고 있는 투자나 부동산에 관련된 일들은 그 도시에서의 추억마저 빚으로만 느껴지는 내게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미사지구에 라이브 음악 카페가 즐비하던 시절, 신도시로 지정된 곳이 모두 논밭이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한들 그게 지금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예전에는 잠실에서, 지금은 하남에서 누군가는 돈을 벌 테지만 그게 인생의 많은 시간 혹은 전부를 하남에서 산 나와 내 친구들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의 조카들은 내가 알던 하남이 아니라 미사에 산다고 말하게 되리라는 것 정도다.


일종의 소속이라고 여겨지는 지역이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성장하고 예상치 않게 어떤 가능성을 품은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해도, 변화의 물결에 탑승하는 것만으로 계급 상승을 이루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짧게나마 그것이 가능했던 유일한 시절을 경험했거나 자신의 경험이 아닐지라도 그걸 지켜본 사람들만이 오직 그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마민지 감독의 아버지 마풍락 씨라면, 후자는 나의 아버지다. 빚을 내서 무엇인가를 사면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간 지 벌써 오래라고 말해도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부동산 광풍에 몸을 맡기면 바람을 타고 오르듯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시대는 애저녁에 끝나버렸다. 1년 새 땅 값이 2백 배 오르던, 마민지 감독의 부모가 1년에 10억을 버는 게 쉬웠던 시절은 지나가버린 것이다. 이제 부동산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아파트 시세차익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애초에 아파트를 분양 받아 구매할 자본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세대는 마민지 감독의 어머니가 ‘우리 집 행복’이라고 표현한 그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도장을 찍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애초에 버블의 수혜조차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그로부터 자본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질 가능성 역시 처음부터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언가가 오르는 것을, 성장하는 것을, 보고 경험한 일이 없다. 오르는 것이라면 대출 금리, 월세, 원천징수 세율, SNS 팔로어 수 정도다. 이 중에서 가장 경제와 상관없어 보이는 SNS 팔로어 수만이 그나마 소득 상승의 가능성과 겨우 붙어 있다니, 정말 놀라운 21세기 아닌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2015)


성장에 대한 다른 감각


마민지 감독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독립해서 살고 있던 집의 책상 앞에는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다른 영화 포스터도 많았는데 그 포스터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2015년 1월 1일에 개봉한 이 프랑스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꼽으며 나는 한 영화 월간지에 이런 평을 남겼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연대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작은 개인의 연대가 필연적으로 실패한 뒤에도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다음 발자국에 대한 영화다. 더 나빠질 미래로, 애써 담담하게. 내게는 2015년과 그 이후에 대한 예언으로 보였다.


작은 개인의 연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 나빠질 내일로 애써 담담하게 걸어가는 다음 발자국에 대해서라면 〈버블 패밀리〉 속 마민지 감독의 이 내레이션을 나란히 두어도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기로 했다.

우리 세대는 겨우 오늘을 산다. 그 오늘이 내일을 위한 시간이 되리라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올라가고, 성장하고, 나아지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부모와 다를 게 없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는 가장 예민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던 시절에 언제든 무엇이든 무너질 수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누군가 안정된 삶을 찾는다면, 반대로 누군가 차라리 모험을 한다면, 어떤 것이든 무너질 수 있음을 알기에 반대의 경로라는 믿음에서 그것을 택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마민지 감독의 부모에게는 끝내 잊지 못할 어떤 찬란한 시절이 인생에 있었다. 그리고 건물주를 신이라 부르고 부러워하면서 그 신에게 매달 월세를 내는 우리에겐 애초에 그런 시절이 없었다. 대신 우리에겐 IMF가 찢고 간 가족의 상처 속에서도 밥을 먹고 학교를 가며 몸과 마음을 자라나게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흉터를 마음에 새긴 우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산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옛날에 치워져 비슷한 자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로또 당첨, 일확천금의 꿈은 어쩌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일지 모른다.


그런 꿈을 꾸면서도 우리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가진 돈으로 남아 있는 빚을 갚고, 월세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고, 오늘을 살아갈 대책을 찾는다. 아직도 과거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간, 여기 서울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마민지 감독처럼 말이다. 나라가 망했다던 1997년에도,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몰아친 2008년에도, 모든 것이 더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살아가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버블 패밀리〉를 보는 보며 내내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잠깐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법을 배운 아버지 마풍락 씨가 틀린 맞춤법으로 딸에게 문자를 보냈을 때였다.


“민지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라.”


우리는 지나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그게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이 더 궁금한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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