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보습학원 아이들을 먼저 구할 수 있도록 헬리콥터를 건너편으로 보낸 다음, 의주(임윤아)가 우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든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젤리를 다시 보게 된 은영(정유미)이 울면서 삿된 것들을 한 번에 하나씩 해치울 때,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고아성이 연기하는 자영 캐릭터의 토대가 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읽은 뒤 나에게 좀 다른 영화가 됐다. 자영이 친구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겠다며 "나는!"하고 선언하듯 울면서 외치는 부분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은영과 의주가 따라왔지만, 이제는 거기 임종린 지회장이 있다. 현실의 사람. 임종린 지회장, 추적단 불꽃, 김지은 씨, 자기 삶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 여성들.
어느 새벽, 밈으로 떠돌아다니는 한 그래프를 보고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이 그래프에서 가장 완벽한 부분은 '울면서 모든 일을 하는 구간'이다. 전체 과정 대비 저 구간의 비율과 설명이 모두 완벽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패닉의 언저리이고, 저 구간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러면 뭐 울면서 하는 거지. 친구가 말했다.
"그냥 하는 거야 울면서. 우린 영웅은 아니지만 그냥 울면서 한다."
하긴,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한다. 그게 무엇이라도. 한다는 게 중요해요, 그쵸? 그렇게 울면서 계속해나간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아무도 거창한 대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어. 하지만 옳지 않기 때문에,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내게는 보이고 나는 봤기 때문에 하는 일이, 거창하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은 아무렇게나 튀고 뒤섞인다. 내가 울면서 하는 나의 일은 그냥 나의 일일 뿐이지만, 울면서 하는 동안에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싸움을 한다는 것. 그 싸움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해야 해. 근데 다른 분들 말고, 우리가 울면서 하는 이유는, 혹시 게을러서나 미뤄서는 아닐까? 음.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 말고.
영화 이야기로 시작된 임종린 지부장 인터뷰에는 힘들 때 소녀시대 노래를 많이 들었다는 답변이 있다. '다시 만난 세계'보다 '더 보이즈'의 가사가 먼저 나오는 게 재밌다. 다시, 영웅이라든가 울면서 한다든가 그래도 계속 싸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될 장면이 하나 늘었다. 패딩을 입은 짧은 머리의 여성이 씩씩하게 걷는다. 귀에는 이어폰. 밖에서 보면 당연히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아주 씩씩한 발걸음과 어울리는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 노래를 상상해본다.
"겁이 나서 시작조차 안 해봤다면 그댄 투덜대지 마라 쫌!"
과연, 이 노래의 포인트는 '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