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과 마감 사이였을 것이다. 거의 모든 마감은 디졸브가 될 운명이지만, 그 틈새 어딘가에서 시간을 내고자 한다면 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끝냈고, 끝내야 할 또 다른 무언가가 있기는 한데 그게 정말 코 앞에 있지는 않은 어떤 날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런 날이었고, 이른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니 이른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아직 밤이 남아있던 날. 친구가 더 놀아야만 한다며 번개를 제안했고, 그렇다면 친구들을 불러서 놀기로 하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또 다른 친구가 우리는 안중에 없이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친구는 복분자 샴페인을 들고 나타났다. 나름의 히스토리와 의미를 가진 선물이었는데, 의미야 어찌 됐건 이런 단 술 따위는 니네나 먹으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맛이 많은 오미자를 좋아하니까 하며 우리 집도 아닌데 넙죽 받았다.
'왜 말을 잃었냐, 왜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냐' 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사회성이 떨어졌다는 친구를 놀리는 시시껍절한 대화를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폭발했다. 폭발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미국이었다면 총소리로 오인한 경찰이 출발하고도 남았을 그런 소리였고, 나는 너무 놀라면 놀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고개를 돌리자 오늘의 번개 주선자인 집주인이 혼이 빠진 채 앉아있었다. 복분자 샴페인의 뚜껑이 폭발한 것이었다. 맑은 자주색이라고 하면 좋을 색깔의 기포가 가득한 물, 아니 술이 우리 사이 테이블에 흥건했다.
결론은 행운이었다. 우와, 진짜 5cm만 비껴갔어도 천장 등에 맞아서 박살이 났을 거야. <선천적 얼간이들> 에피소드 알지? (네이버 웹툰, 41화 '죽을 만큼 축하해' 편을 참고하시오. 쿠키 2개 필요) 진짜 진짜 만약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이마나 눈에 맞았다고 생각해봐. 으아아악. 그래 진짜 행운이야. 억지 행운을 만들어낸 우리는 테이블을 후딱 치우고 떠들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인 대화가 영원처럼 이어졌다. 친구가 재일교포 3세를 '제삼교포'라고 말한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 말고도 많은 대화를 했지만...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미자 샴페인의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그냥 그런 날들이 우리의 보통이라는 것. 뭐 그렇게까지 다 기억 못 해도 다음에 만나면 또 그렇게 놀면 된다는 것. 고양이 보통이는 그즈음에 나를 보면 늘 욕을 했는데(사진 속 표정을 읽어보시오) 보통이도 펑 하며 웃음 소리가 터지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