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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16. 2020

귀엽고 있답니다

지인이 만든 고깔모자 모양의 반지 꽂이를 봤을 때, 모두들 '꼬깔콘!'을 외쳤다. 노란색이었으니 당연한 연상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 '마녀 모자!'를 외쳤다. 마녀 모자라는 것은, 네 마녀 모자입니다. 애초에 고깔이나 마녀모자나 긴 원뿔 모양이 비쭉하니 올라온 것은 똑같고, 무슨 색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검은색이 갖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마녀 모자를 좋아하니까. 마녀를 좋아하니까. <위키드>를, 엘파바를 좋아하니까.


"너와 내가 중력을 벗어나, 저 끝없는 하늘을 난다면 우릴 막을 순 없어."


단 하나뿐인 친구에게 손을 떨며 이 말을 건네지만, 친구는 손을 잡고 함께 빗자루에 올라타는 대신 망토를 단단히 입혀준다. 같이 갈 수 없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한다. "행복을 빌어, 네가 선택한 길." 너도. 다 이룰 수 있기를 후회 따윈 없기를. 그렇게 홀로 중력을 벗어나 날아오른다. 누군가 얘기했으니까. 한 번쯤 날개를 펴라고. 


아니, 이런데 도대체 어떻게 초록 피부를 가진 외톨이 마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그러니까 나는 마녀모자를 갖고 싶다는 얘기를 길게 한 것이다. 반지는 몇 개 없지만 그건 나중 문제야. 하지만 지인이 떠 둔 꼬깔이 중에 검은색은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가장 산뜻한 색을 골라 주문했다. 노란색이 좋겠어 집에 어울릴 것 같아. 


매일 귀여운 메시지가 네이버 톡톡을 통해 들어왔다. 꼬깔이가 출발했습니다. 꼬깔이가 택배사에 도착했습니다. 꼬깔이가 배송 중입니다. 꼬깔이가 배송 도착 예정입니다!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꼬깔이가 총총총 다가오는 거 같았다. 그럴 때면 처음 지인의 스토어가 오픈했을 때 동물 얼굴 모양의 애플 펜슬 꼬다리 상품설명에 있었던 문장을 떠올리곤 했다. "애플 펜슬 끝에 달아두면 우리가 안 보는 동안에도 귀엽고 있답니다." 꼬깔이도 나에게 오는 동안 내내 귀엽고 있었다.


포장을 열어보니 작은 메모가 있었다. 친구에게 마녀모자를 갖고 싶어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검은색으로 하나를 더 떴다고 했다. 마녀모자와 꼬깔이가 겹쳐져있었고, 세상이 더 귀여워졌다. 손가락보다 작은 마녀 모자만큼. 그걸 더 뜨면서 '손이 두 개라 조금 느려도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다정함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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