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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Jun 26. 2018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휴가 처방전

약은 약사에게, 디지털 해독은 아날로그에게


지난 봄, 일본 여행 중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 있었다. 배터리 빌런 구글 맵을 남용 하다가 스마트폰이 꺼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콘센트 있는 카페를 찾아서 국제 미아가 되지는 않았으나, 덕분에 금쪽같은 2시간을 카페에서 허비했다. 


한 가지 얻은 교훈은 스스로 얼마나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자각했다는 점.


쓰라린 교훈을 얻은 후,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었다.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디지털 디톡스' 없이는 그 방법들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어렵겠다는 생각 말이다.




디지털도 '해독'이 필요해


세계적으로 디지털 중독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항마로 나온 것이 바로 디지털 디톡스 되시겠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는 디지털 홍수에 빠진 현대인들이 각종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명상이나 독서, 기타 문화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디지털을 멀리하고, '아날로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D사의 조사에 따르면 아날로그 관련 언급량이 2015년에는 33만 4203건, 2017년에는 36만 4059건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적 분석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눈에 띄게 아날로그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아날로그를 몰아냈던 디지털이, 오히려 다시 한번 아날로그의 부활을 야기한 것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휴가 처방전


증상을 느끼고, 병을 알았으니 이제 치료할 차례다.

지금부터는 디지털은 디톡스를 위한 '휴가 처방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아날로그의 주역들과 필자의 주관적 취향이 결합된 처방전이다. 실제로 필자의 여름휴가 계획의 일부이기도 하다. 



1. 취향 확고 북캉스 - 동네책방

처방전: 취향 저격하는 동네책방에서 여유로운 시간 보내기

최근 새로운 문화생활과 여가활동의 공간으로 동네책방이 주목받고 있다. 동네책방은 기존의 중소형 서점과는 구분되는 형태로 특정한 콘셉트와 독특한 취향을 내세워 운영한다. 대형서점에 비하면 책의 종류나 규모도 훨씬 작지만, 책방 주인만의 ‘취향’이 큰 차별점으로 작용한다.


해방촌의 동네책방 여행지도 ⓒFunnyplan


책방 주인의 취향이 반영되었을 때 좋은 점은 베스트셀러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큐레이션은 곧 책방의 정체성이 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된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아날로그 감성의 소비와 SNS의 인증 바람이 출판과 지역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다녀왔던 해방촌에는 다양한 동네책방을 만날 수 있다. 근대화와 현대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은 해방촌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동네책방으로 가득하다. 


해방촌에 위치한 동네책방 <고요서사>


필자가 다녀온 책방 ① 고요서사 
필자가 갔던 해방촌 책방은 '고요서사'라는 곳으로, 출판사 8년 차 편집자 출신 주인장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차린 서점이었다. 주인장이 고르고 고른 소설, 시, 에세이는 물론 함께 읽으면 좋은 인문·사회·예술 책도 준비되어 있다. 


추리소설 전문 책방 <미스터리 유니온>


필자가 다녀온 책방 ② 미스터리 유니온 
작년 추석 황금연휴 때는 신촌기차역 근처에서 색다른 서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추리소설 전문 책방 '미스터리 유니온'이었다. 나무 문을 열고 책방에 들어서면, 7평 남짓의 작은 공간 벽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추리소설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추리소설 입문자에게는 주인장께서 추천해주기도 한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다양한 문화적 취향이 공존하고, 책을 좀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동네책방의 부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일이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은데, 이번 여름휴가를 통해 꼭 방문해보고 싶다.




2. 추억을 간직하는 새롭고 낡은 방법 - 필름&흑백사진
처방전: 스마트폰 속이 아닌 손으로 직접 사진 느껴보기


저장된 사진은 데이터일 뿐 '꺼내보는 사진'이 돌아왔다.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포토그레이 오리진(이하 포토그레이)'을 소개한 기사의 내용이다. 포토그레이는 간단하게 말해 흑백 즉석사진이다. 두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앉아 셔터 소리에 맞춰 표정을 짓고, 포즈를 취한다. 그렇게 네 컷을 찍고 잠시만 기다리면 따끈따끈한(?) 흑백 즉석사진을 만날 수 있다. 


부천역CGV에 위치한 포토그레이 부스


포토그레이는 디지털 기기 화면으로만 사진을 소비하던 이들에게 새로움으로 다가간다. 어떠한 뽀샵(보정)도 할 수 없지만, 흑백에 담기는 특유의 감성이 큰 매력으로 어필된다. 당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색다른 추억으로 공유하기에도 좋다. #포토그레이 #photogray 등 관련 해시태그에는 즐거운 웃음이 가득하다. 

또한, 2017년 최고의 인기 앱 중 하나인 '구닥 캠(Gudak Cam)'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스마트폰으로 필름카메라의 아련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앱인데, 실제 필름카메라처럼 24장을 찍으면 3일 뒤에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느리고 불편한 것이 분명한데 이게 또 매력으로 다가온다.


흑백사진을 간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두근거림준


이외에도 아예 필름카메라를 애용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으며, 흑백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필자도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을 찍어 봤는데 확실히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필름과 흑백사진은 추억을 간직하는 새롭고 낡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유니크한 것이 되고,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 된다. '구닥다리'라 불리는 필름과 흑백사진은 더 이상 불편함과 답답함이 아닌 설렘이 되었다.



3. 불완전한 감성의 매력 - LP
처방전: 이어폰 대신 LP를 통해 휴머니즘(?) 가득한 음악 감상하기


마지막으로 소개할 처방전은 어딜 가든 이어폰을 달고 사는 필자에게는 필수적인 처방전이다. 구시대의 유물이자 아재들의 취미생활로 규정되었던 'LP'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들어, 젊은 세대의 LP에 대한 관심이 급도로 상승했다. 실제로 지난해 1~9월 대형서점 K사의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6%, 턴테이블 판매량 역시 22% 증가했다. 서울 레코드페어, 바이닐 페스티벌 등 LP 관련 축제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던 LP 제작 공장을 13년 만에 부활시켰다.



LP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LP가 가진 '불완전성' 때문이다. 사실, 이 LP라는 게 상당히 손이 많이 간다. 우선 턴테이블을 장만해야 하고, 음악을 들으려면 직접 LP를 뒤집어야 하며, 심지어 지지직 잡음이 나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단점들이 완전무결한 디지털 음원과 달리 인간미와 정감으로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LP는 음악을 소장하는 기쁨을 준다. 전자책이 점차 발전하고 있어도, 여전히 (필자처럼) 종이책을 모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소유의 즐거움'을  LP를 통해 충족할 수 있다. 게다가 LP의 재킷은 또 얼마나 예쁜가, 웬만한 것보다 예술적 가치가 높아 수집욕을 자극한다. 


이태원 LP바 <스테어웨이> 


이러한 LP는 단순한 개인의 수집욕 충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LP바(Bar)에서부터 LP카페, 음악다방, 음악감상실 등 LP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이태원 LP바 '스테어웨이'를 다녀왔는데, 빼곡히 자리 잡은 LP부터 특유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신청곡을 구비되어 있는 메모지에 적어서 DJ에게 주면 틀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노래를 제외하면 웬만큼 틀어주는 것 같다. 아래는 필자가 신청했던 곡들이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필자의 신청곡 리스트
The Beatles - Hey Jude (1968)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1983)
Sting - Shape of My Heart (1993)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1965)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음악이 대다수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좋아하는 옛날 노래가 있다면, 꼭 신청을 해보자.




결국 사람, 결국 아날로그


지금까지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나름의 휴가 처방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처방의 중심은 아날로그였다. 이처럼 아날로그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모두가 디지털을 당연시하는 시점과 맞물려 벌어진 역주행이다.



책장을 넘길 때 손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처음 바라보는 순간, 턴테이블을 따라 되감기는 옛 시대의 향수는 디지털 기기에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이 모든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 '힙'하고 유니크한 것으로 자리 잡으며 아날로그는 드라마틱한 부활을 하게 되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정서를 채워주지 못하는 한, 이러한 트렌드는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며 새삼 명확해진 점은 어디까지나 디지털은 환경이자 수단이며, 결국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완벽함과 속도가 디지털의 영역이라면 정서와 관련된 모든 것은 아날로그의 영역이다. 추억, 따뜻함, 대화, 소통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는 한 아날로그는 꾸준하게 사랑받을 것이다.

올해 여름휴가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아날로그와 함께해보면 어떨까?


* 본 콘텐츠는 마케팅 스터디 매거진 <YOMA> Vol.4의 콘텐츠입니다. 더 다양한 콘텐츠는 <YOMA>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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