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서 메일이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반기 보고를 진행했고, 다행히 잘 마무리된 듯싶다.
마케터들은 짧게는 주간 단위부터 월간, 분기, 반기, 연간까지 일정한 기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특히나 대행업을 하는 에이전시 마케터에게 보고서는 정말 중요한 존재다. 클라이언트에게 비싼 돈 주며 '대행을 맡기는 이유'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서에는 마케터의 피, 땀, 눈물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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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 많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간도 천차만별이지만 에이전시에서 대행을 진행하는 채널도 정말 다양한데, 그에 따라 필요한 수치와 작성해야 할 내용도 달라진다. 또한, 같은 채널일지라도 클라이언트의 목표와 성향에 따라 경우의 수는 무한히 늘어난다.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겠지만, 보고서를 쓰는 목적은 하나다. 성과지표를 달성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이를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고 한다. 블로그는 방문수, 페이지뷰, 콘텐츠의 체류시간 등이 해당될 것이고,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페이지 좋아요, 콘텐츠 도달이나 반응(좋아요, 댓글, 공유 등)이 KPI로 설정된다.
KPI는 마케터에게 애증의 존재인 셈인데, 달성한다면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는 건 물론이고 연장 계약을 통해 회사에 지속적인 이윤을 안겨줄 수 있다. 다만, 달성하지 못한다면 PM(Project Manager)으로서의 운영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며, 심하게는 계약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KPI 달성에 실패한다고 당장 해고되지는 않겠지만 이는 심리적으로도 큰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에이전시에게 돈을 주고 대행을 맡기는 이상성과지표를 통해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보고서에 담긴 지난 한 달의, 6개월의, 1년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 슬플 뿐이다.
KPI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면 하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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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에이전시 마케터지만,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를 때도 매우 많다. 아무리 에이전시에서 '전문가의 입장'으로 다양한 제안을해도 결국 선택의 몫은 클라이언트에게 있다. PM으로서 프로젝트를 더 좋은 방향으로 운영하기 위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국 한계는 있는 법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클라이언트 이기는 에이전시 마케터 또한 드물다. 애초에 이기고 지고의 문제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클라이언트의 선택에 따라 더 안 좋게 흘러가는 경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적인 원인도 다양하게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KPI 달성 실패가 단순히 PM의 자질 문제라고 단정하는 건 억울할 일이다.
결국, 클라이언트나 에이전시 마케터나 모두 잘 되자고 하는 일이다. 잘하고 잘못하고를 따지기보다는 함께 이번의 실패를 분석하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보고서가 단순한 성과지표를 넘어 그 그림의 밑그림이 되길 바랄 뿐이다.
쓰다 보니 보고서에 대한 하소연이 된 것 같지만, 그만큼 에이전시 마케터의 보고서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KPI 달성에 기쁘기도 하고, 실패에 슬프기도 하며, 보고를 잘 마무리한 후 동료들과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즐거운 게 마케터다.
보고서를 쓰며 매번 웃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수고했다고 스스로 토닥일 수 있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반기 잘 해냈으니, 하반기도 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