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 솔직히 영국 음식은 맛없던데요

호스트 부부의 빈곤한 음식

by 사람 여행자

영국 하면 어떤 음식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영국 여행을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유독 영국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잘 없습니다.

피시엔 칩스(Fish&Chips)가 있긴 한데,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평범한 생선가스를 감자튀김과 함께 내어주는데, "이게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건 그만큼 다른 음식이 형편없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피시엔 칩스 맛은 있습니다.

바삭한 튀김가루를 입힌 촉촉한 생선 살과 포슬포슬한 식감이 살아있는 감자튀김. 담백하게 삶은 완두콩과 저마다의 비법으로 만든 소스까지 곁들여 먹으면 그야말로 배부른 서민 음식이죠.


아, 서민 음식이라는 표현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보통 그렇게들 말하는 데 얼마냐고요?

식당에서 먹으면 2~3만 원 정도 내야 해요. 다른 나라에서 저렴한 스테이크를 사 먹을 돈으로 영국에서는 생선가스를 먹는 셈이니 가성비가 형편없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집밥은 어떨까요.

"너는 영국 가면 허구한 날 감자만 먹을걸?"이라는 친구들의 빈정거림이 사실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고된 농장일을 하는 노부부에게는 분명 힘의 원천이 있을 거예요. 한국 농촌에서도 일하다 말고 달콤한 새참을 맛보잖아요. 영국 새참과 집밥은 어떻지 사뭇 기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어요.

노부부의 음식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양이 너무나도 부족했어요.


아침 열 시에 홍차와 토스트 네 쪽을 먹고 나면, 그다음 식사가 무려 밤 열 시에 있었습니다.


열두 시간이나 되는 공백에는 무엇을 먹냐고요?

티 타임을 가집니다. 쿠기와 차가 다였죠.

이 간식이 노부부의 점심을 대신했답니다.

어처구니없죠?

막말로 당나귀보다 못한 대우였어요.


저를 위해 점심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그들의 삶은 바쁘고 궁색했습니다. 둘이서 당나귀 열여덟 마리를 돌보는 일은 기적에 가까웠어요.

그렇다고 수입이 충분하지도 않았습니다.

농장 입구에 놓인 상자에 기부금을 받는 형식으로 생계를 이어갔거든요.


이곳 클로벨리 마을은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에요.

조용한 관광지를 좋아하는 현지인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진 곳이죠.

과연 휴가철 동안 바짝 벌어둔 수입으로 보릿고개를 버틸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나니 더 많은 음식을 요구하는 게 오히려 미안했어요.

여행자가 일한 만큼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호스트의 의무가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네요.

따로 시간을 내어 점심을 만드는 일은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불가능했습니다.

저 역시 이대로는 배가 고파 일을 할 수 없었죠.


"바트. 저 너무 배고파요. 점심 없이 농장일을 하는 건 진짜 무리예요. 차라리 저녁을 만드는 김에 1인분만 더 요리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 날 점심으로 데워먹게요."


제 생존이 걸린 문제다 보니 필사적으로 묘안을 짜냈습니다.

바트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죠.


하, 점심이 없었을 때는 밤 10시에 폭식을 하고 침대에 바로 누웠어요.

몸은 지친데 배는 고프니 제 몸이 통제가 안돼더라고요.

밤새 더부룩한 속과 살을 에는 추위에 자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 밥은 해결했네요.

바트가 해주는 영국식 집밥. 양이 부족해 문제였지 맛은 있었습니다.


으깬 감자나 쌀밥에 구운 고기와 채소를 곁들여 먹는 게 다였지만 충분했어요. 덕분에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 음식에 대한 오해를 어느 정도 풀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항상 배가 고파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네요. 하하.


만약 대학교 생활을 하다가 바트의 집밥을 먹을 기회가 있다면?


바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저렴한 학교 식당을 이용할게요.

제가 만든 포토북에 바트의 음식 사진이 남아있어 캡처해보았습니다. 오른쪽 하단은 제가 만든 한국요리입니다 :)



TIP

- 이렇게 음식이 부족하거나 다른 불편사항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호스트에게 요구하세요!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까 별별 해프닝이 생겨요.

저희한테는 상식인데, 호스트는 모를 수도 있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고요.

여기서 문화 차이를 경험하는 거고, 그런 갈등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내성적이라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굶고 마는데요.

여행 중이다 보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조금씩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제 모습에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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