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 인턴 2달 차, 울며 졸업하기.

아, 졸업하기 싫었는데.

by 사람 여행자

이번 인턴 채용 공고에서

유독 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확히 뭐라고 쓰여있었냐면요.


"반복적인 업무도 꾸준히 실수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꼼꼼함"


이제 막 마지막 학기를 끝낸 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겠습니까.

반복적인 일, 그러니까 정직원이 하기에는 시간 아까운 일을 하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런 사소한 일이라도 실무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분명 배울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

첫 두 달 동안, 제가 한 일은 크게 4가지였습니다.


- 영어 상품을 번역하거나 검수하는 일

- 경쟁사의 가격 동향을 파악하는 일

- 해외 파트너사 상품을 연동하는 일

- 창고에 있는 상품을 택배로 배송하는 일


채용 공고에 나왔던 것처럼, 면접 때 경고했던 것처럼,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이었어요.

사무실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같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제 업무 만족도가 낮은 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그 속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어요.

가령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나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위 4가지 업무를 하는 것만으로 하루 여덟 시간이 벅찼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을 하고 싶다'라는 제안을 관리자에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관리자는 저에게 이런 일을 더 시켜봐야겠다는 제안을 할 수도 없었겠죠.

계약도 3개월 단위였으니, 참 애매모호했습니다.


'3개월만 하고 다른 회사 정규직 공채에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어차피 여기는 정규직 전환형 인턴도 아니잖아. 하는 일도 매번 똑같고. 지금 하는 일을 한 달 뒤에도 똑같이 하고 있다면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


또, 저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던, 퇴사한 인턴 분도

"이 업무는 3개월이면 충분할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부터 저는 하루를 두 번 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한국사와 오픽 등 같은 시험공부를 했어요. 꾸준히 수영하며 체력도 관리했고요.

동료 인턴들처럼 부지런하게 노력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 한 번, 퇴근하고 나서 또 한 번.

하루를 두 번 쓰니까 시간이 정말 빨리 가더라고요.


어느덧 졸업식 날짜까지 가까워졌습니다.



졸업식


솔직히 말해서 졸업식에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대학교 졸업이긴 하지만,

축하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결국에는 졸업식에 가서 사진도 남기고 했는데요.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후배를 여럿 만나서였어요.

또, 무대에 선 느낌이랄까요.

함께 졸업하는 우리의 얼굴과 이름이 박힌 현수막이 있고, 사진 찍을 때는 정중앙.


모처럼 주목을 받아서 좋았던 거죠.

졸업해서 좋았다는 느낌은 결코 없었습니다.


학생일 때가 제일 좋다고들 하니까,

이제 직장에 들어가서 평생 돈 벌 생각하니까,

해마다 한 달씩 배낭여행 못 할 생각 하니까,

이건 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하하.


무엇보다 제가 지금 취업한 게 아니잖아요.

인턴을 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곧 그만둘 것 같고.

그렇게 힘들다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려고 하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업 유예가 유행(?)입니다.

졸업을 늦추는 거죠. 그 이유는...


- 재학생 신분이므로 졸업생이 지원할 수 없는 몇몇 인턴이나 대외활동에 지원할 수 있다.

- 취업 준비할 때 심적으로 매우 편안하다.

- 졸업 직후 생기는 공백기를 없앤다.


예시

a.

잔소리: "너는 졸업도 했는데 뭐하냐?"

모범 대답: "저 아직 졸업 안 했는데요? (매우 당당하게)"

b.

독백: '괜찮아. 아직 졸업 안 했잖아. 급할 거 없어. 취준은 마라톤이야.'


그런데 저는 유예를 하지 않았습니다.

배수진을 치려고요. 성격이 좀 게을러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면 나태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감 조성을 위해 칼졸업했습니다.

이제 제가 돌아갈 곳은 없으니 더 필사적으로 취업 준비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작전은 실패입니다.

위기감만 죽어라 느끼면서 애간장만 태우고 있네요.

졸업식 안가려고 가운도 예약안했었는데. 반납하는 친구꺼 용케 붙잡았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며칠 뒤,

인턴으로 일한 지 두 달 정도 흘렀을까요.

갑자기 팀장님이 말했습니다.


"경섭님. 부서를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저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요?'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0대에 20개국 가기, 라는 꿈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배낭여행을 더욱 쉽게 떠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윤경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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