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미혼모가 되었습니다1
프롤로그)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매일 밤 숨죽여 우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네 삶에서 가장 고단하고 힘든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네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일밖에 없었다
넌 원래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영.
난 네가 참 부러워
어릴 적 엄마는 너를 부르다가 지쳐 화를 내기 일쑤였지 매 번 깊고 넓은 상상 속에 빠져 2020 원더키디의 주인공 아이캔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고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리 돈데크만에게 소원을 빌고,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세상 여행을 하는 상상을 했다지. 상상 속의 나는 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이었어.
건물 안 6가구의 기름보일러가 모여 있는 창고 바로 옆, 하루종일 기름냄새와 소음에 시달리던 지층 단칸방, 타일이 벗겨져 훤히 드러나는 시멘트 바닥, 조심하지 않으면 어깨고 무릎이고 생채기 나기 일쑤였던 그런 집에서 대학을 꿈꾸었고 지상으로 올라가 햇볕을 볼 수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소원이던 시절 기억나니?
넌 비록 가난했지만 누군가들이 질투할 만큼 멋지게 학교 생활을 했지 넌 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었어.
제일 친한 친구가 배신해 왕따를 당하던 그 순간에도 좌절은 커녕 더 열심히 공부해서 3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를 입학했지.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힘들어하기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 시절 최고성적을 받았고 외로운 시간마다 쓴 소설로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로맨스 작가가 되었었지. 지금도 집 어딘가에 10권에 달하는 공상과학로맨스 소설이 있을거야.
난 그때 네가 정말 소설가가 될 줄 알았어. 네 인생에서 가장 글을 많이 썼던 시절이었을거야.
그런 시절을 보낸 네가 참 부럽다.
넌 언제나 좌절하기 보다 일어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았고 혼자가 되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네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살았잖아.
그렇게 어른이 되고
따뜻한 봄햇살이 가득한했던 어느날,
그 볕이 하도 따뜻해서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날 이대로 드라이브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시간되면 드라이브나 갈까요?" 매일 교생실습이 끝나고 카풀을 해주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었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예요.날씨 너무 좋죠?" 차는 이미 내가 내려야할 장소를 지나고 있었지.
거의 한달을 함께 퇴근하던 사이였지만 딱 카풀만 해준 사람이었고 가끔 학교에서 볼 때 음료수 건네며 서로의 힘듦을 얘기하는 교생실습 동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사람과의 교생실습 마지막 날. 그날을 계기로 서로에 대해 궁금해졌고 함께하고 싶은 사이가 되었지.
사랑했지. 어두운 백열등 밑 낡아빠진 노량진역 개찰구를 나오는 그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까.
갑자기 하늘로 가버린 그. 떠나고 나서야 사랑임을 깨달은 무지했던 너.
너무 늦게 알아차렸지만 깊이 빠져 무언가를 해본 기억이 없는 너에게 그 때의 마음은 바다보다 더 깊은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같아.
세상 속의 주인공은 늘 너였으니 사랑에 빠진 줄도 모르고 사랑을 했지 당연히 사랑받고 당연히 배려받고 내 맘대로 하는 게 옳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말이야.
24살 가장 예쁜 나이.
넌 참 열심히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시절도 있었네.
덕분에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J를 얻었지.
네가 참 부럽다.
나이를 들고 보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
살면서 그토록 가슴 시리게 그리워하고 웃다가도 울컥 눈물흘릴 만큼 절절하게 보고싶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영영 만나지 못하지만 이제는 찬란하게 사랑했던 그 순간이 J의 눈동자에 담겨있어 .
J를 데리고 힘들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친구 어머니는 너에게 사업체를 두 개 가진 분의 아들을 소개해주셨지?
먹고 살 걱정하지말고 이쁘게 살라고.
친한 친구의 아들이라면서, 맞아 좋은 분이더라.
X는 너에게 배울 점이 많아 좋다고 결혼을 서둘더라.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다 품어주겠다고.
그때 마침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졌고 그날 마침 예식장 예약이 없어서,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순조로워서 우리는 결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지.
결혼식 후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하혈을 했어 많이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지. 그런데 선근증으로 인해 임신이 힘든 너의 몸에 복덩이 찾아왔다는 소식이었지.
정말 우리는 운명이구나 계속해서 몰려오는 좋은 일들에 벅차하며 하루 하루 행복한 일들만 기다릴 줄 알았지
복덩이가 왜 복덩이겠니.
너에게 온 복덩이는 네 눈에 씌여있던 까만 장막을 걷어주었어.
피곤에 지친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이 큰 사람인 줄 알았던 X의 가면을 벗겨주고 J의 아빠가 되어줄 생각이 없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며.
X의 모든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며.
회삿일이 잘 안풀리고 큰 아들이 자꾸 사고를 치니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X는 7개월된 뱃속의 아기를 지우라고 했어. 자신의 불행이 너와 복덩이 탓이라며 힘없는 임산부에게해서는 안될 말을 들었던 그 순간 넌 충격을 받았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지.
하지만 지금, 말도 못하는 그 복덩이가 피곤한 어느 날 방긋방긋 웃으며 널 위로한다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눈으로 어루만져준다며.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매일 사랑해라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복덩이의 입을 보며 씨익~ 미소짓는다며.
너 진짜 부럽다.
미워하는 사람때문에 가슴앓이 하지말라고 가장 큰 복수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복덩이도 있으니말이야.
어떤 이는 산후우울증이 있대.
넌 복덩이 덕분에 깊은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왔잖아.
복덩이는 네 삶에서 끊임없이 복을 가져다 줄거야 호박이 넝쿨채 굴러왔다는 말이 복덩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이제 슬퍼하고 아파하지마.
잘 기억해봐.
6살 J의 유치원 원장님이 말씀하셨지.
"J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요.
사랑받을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친구예요.
부모가 모두 있는 집 아이들 보다 더 사랑받고 자란 친구여서 어딜가든 사랑받을 거예요.
전 J의 미래가 기대가 되어요"
14살이 된 J의 담임에게 이런 말도 들었잖아.
"어머님이 너무 뵙고 싶었어요,
J가 너무 멋진 친구라 이렇게 잘키운 아들의 엄마가 궁금했었어요."
넌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J를 지켰고 잘 키웠잖아.
네가 선택한 미혼모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건 이미 네가 걸어왔던 삶이 증명하고 있잖아.
네가 다시 선택한 미혼모의 길은
복덩이에게서 아빠를 뺏는 것이 아니라 복덩이를 아빠로부터 지키기 위한 길이야.
네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잊지마.
그리고 다시 어려운 길을 선택한 너의 용기를 칭찬해 네가 한 많은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일거야.
자영아, 넌 앞으로 더 멋지게 빛날거야.
J와 복덩이가 네 삶을 함께 빛내줄거야.
지금도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 너.
네가 꿈꾸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테니 난 찬란한 미래를 가진 네가 정말 부럽다.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