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돌리기

미혼모 내집 마련기2

by 누드빼빼로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내게 “넌 참 착한데, 독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착한데 독한 사람이라니, 그게 가능한 걸까?

독하다는 부정적인 말에 상처를 받고, 내 스스로 뭐가 문제지? 고민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아마도 ‘결심하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고작 90만 원 남짓이었다.
직업전문학교에서 OA 과정을 가르치며 시간당 3만 원을 받았다고 하면 꽤 괜찮은 금액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달랐다.

강의는 정해진 시간 동안만 진행되었지만, 수업을 준비하는 데 드는 노력과 행정 업무까지 합치면 실제 근무 시간은 훨씬 길었다.

정규직 강사처럼 매달 일정한 급여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출퇴근 시간만 왕복 세 시간—거의 하루의 반을 일과 이동에 쏟아부어야 했다.

몸은 늘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큼은 단단했다.

“그래도 내가 매달 일정한 수입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시절의 나를 버티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생활의 규모’라는 것이 생겼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나와 아이, 그리고 가족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규모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저금’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은 돈을 저축한다’는 방식으로 살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늘 부족했고, 늘 빠듯했고, 늘 계획보다 먼저 나가는 지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살았다. 먼저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살아가는 것.

그건 생존이자,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작은 저항 같은 습관이었다.

적금에 대한 감각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 대신 동생과 함께 자취 아닌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주에 5만 원 남짓한 생활비 겸 용돈을 받아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먹을 것도, 교통비도, 학교 준비물도 그 돈으로 해결했다.

문제집은 사기엔 너무 비쌌으니 선생님께 얻거나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공부했다.

누군가는 가난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시절 덕분에 알뜰함이 몸에 배었다고 생각한다.

그 5만 원 속에서도 나는 꼭 1만 원을 떼어 월 5만 원짜리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물론 그 적금 통장은 끝까지 간 적이 거의 없었다.

60만 원이 되기 전 생활비에 보태느라 깨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또 만들었다. 깨고 또 만들고, 다시 깨고, 다시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나는 이미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었던 아이였다.

그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고, 보여주지도 않은 나만의 약속 통장을 만들었다.

첫 월급 90만 원을 받았던 그 시절, 한 달 5만 원짜리 적금이었다.

누가 보면 사소하고 웃을 수도 있는 금액.

하지만 내게 그 통장은 절대로 깨지 않겠다는 다짐의 상징이었다.
생활비 85만 원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요령이 생겼고, 커피 한 잔 줄이고, 기저귀값 조금 아끼고, 새 옷은 사고 싶어도 발걸음을 돌리다 보니 적금액을 7만 원으로 늘릴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네 개의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금액은 작아도 내 손으로 만든 그 통장들은 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첫 번째 경험이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전집 판매 일을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 벌기도 했다.
그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벅찼지만, 세 달 정도는 이전보다 많은 수입이 들어왔다.

가장 많이 번 달은 250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밥벌이를 잘한다고 느꼈던 순간은 그 금액을 벌었을 때가 아니라, 120만 원을 벌 때도, 60만 원을 벌 때도, 250만 원을 벌 때도 똑같이 저축하는 습관을 잃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믿고 꾸준히 쌓아가는 태도가 중요했다.

그 즈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풍차돌리기 저축’을 시작했다.
적금을 시작 날짜를 다르게 하여 여러 통장을 만들어 돌리는 방식이었는데, 매달 적금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새로운 적금으로 돌려 넣었다.

생활이 조금만 나아지면 금액을 늘리고, 어려워지면 적금 넣는 간격을 벌였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마치 작은 톱니바퀴를 계속 돌리는 것처럼 꾸준히, 느리고 성실하게 쌓아가는 저축이었다.


* 풍차돌리기의 원리

풍차돌리기는 일정한 금액으로 여러 개의 적금을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가입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적금을 매달 하나씩 새로 들면, 1년 후부터는 매달 하나씩 만기되는 적금을 타게 된다.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풍차의 날개처럼 계속 돌아가는 셈이다.


* 내가 배운 풍차돌리기의 장점


1. 작은 돈의 힘을 체감할 수 있다.
만기 때마다 작은 성취감이 생기고, 그 성취가 다시 다음 저축으로 이어진다.

2. 꾸준함이 습관이 된다.
한 번에 큰돈을 넣지 않아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저축이 ‘생활의 일부’가 된다.

3. 현금 흐름이 안정된다.
매달 만기되는 돈으로 예상치 못한 지출을 감당할 수 있어 ‘돈 때문에 흔들리는 일상’이 줄어든다.



* 풍차돌리기를 할 때 주의할 점

1. 욕심내지 말기.
처음부터 큰 금액으로 여러 개를 돌리면 유지가 어렵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소 금액’에서 시작해야 한다.

2. 만기 후의 계획 세우기.
만기 돈을 다 써버리면 풍차가 멈춘다. 원금은 다시 저축하고, 이자만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3. 생활비와 구분하기.
통장은 반드시 저축 전용으로 따로 관리해야 자신도 모르게 깨뜨리지 않는다.


처음 탄 적금 60만 원은 아직도 내 앨범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그건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는 증거이자 착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내 의지의 상징이다.

적금 통장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숫자일 뿐이지만,
내게는 살아낸 시간의 기록이고,
무너지지 않으려는 나만의 방식이며,
아이와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올린 작은 성벽과도 같다.

그 성벽을 쌓으며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믿는다.
또 그 믿음이 결국은 우리 가족을 앞으로 이끌어갈 힘이 될 거라 믿는다.

사람들이 말하던 그 ‘독함’은, 남을 밟는 독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독함, 포기하지 않는 끈기였다.

그 독함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언젠가, 풍차돌리기로 만든 그 종잣돈이 ‘내 이름이 적힌 집’을 여는 첫 열쇠가 되어주었다.

착하지만, 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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