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 마련기 3
중학교 2학년, 도덕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희의 꿈은 뭐니?”
친구들은 의사, 교사, 디자이너,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는 부자가 되고 싶어요.”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피식 웃었고, 누군가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도 잠시 말을 멈추셨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돈이 많은 부자도 좋지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가진 걸 나누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요.”
그제야 친구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선생님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부자’라는 단어는 내게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이자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엄마는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셨고,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동생의 엄마가 되었다.
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남은 용돈으로 모은 적금은 만기가 되기 전 생활비에 보태야 했다.
그게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 믿었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어린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겁고 외로운 책임이었다.
친구들은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웃고 떠들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기고 집안일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다 해충 이가 옮은 일을 핑계로 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동생과 동네를 돌며 공병을 주웠다.
당시의 나는 그 선택이 더 나은 행동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어린 마음을 달랬던 것 같다.
공병을 모아 팔아 500원 남짓 생기면 춘장이나 카레 가루를 사 와 감자와 양파만 넣고 짜장이나 카레를 만들었다.
돈이 조금 더 있는 날이면 조리퐁 한 봉지와 200ml 우유를 사서 말아 먹었는데, 그건 우리 자매에게 작은 특별한 간식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이것도 재미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새 운동화를 신고 싶던 날에도 만 원이 넘는 가격을 보고 놀라, 그냥 신던 신발을 신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브랜드 신발도 아니었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지금 생각하면,
가난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
그리고 가족끼리조차 서로에게 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가난이 이유가 되는 눈물을 남기지 않겠다.’
그 다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힘든 날에도 다시 일어나게 한 건 그때 세웠던 그 결심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 다짐 하나로 버텼고, 그 다짐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역사학자 **카를로 M. 치폴라(Carlo M. Cipolla)**의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을 읽었다.
그는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었다.
현명한 사람(Intelligenti) —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순진한 사람(Sprovveduti) — 자신은 손해 보지만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영악한 사람(Banditi) — 자신은 이익을 얻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Stupidi) —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도 손해를 보는 사람
태어난 모양새가 절대 영악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두 선택지는 현명한 사람과 순진한 사람이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나는 순진한 모습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며 남에게 무조건 봉사할 깜냥은 못된다.
‘부자’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 즉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어릴 때 막연한 꿈이 정말 나의 꿈이 된 것이다. )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사는 부자. 나의 이익이 누군가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삶.
그게 내가 지향하는 ‘지혜로운 부(富)’의 형태다.
돈은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진짜로 드러내는 건 그 사람의 본모습이다.
가난할 때는 겸손했던 사람이 돈을 가지면 거만해지기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인간관계나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즉, 돈은 사람의 태도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돈은 사람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드러내주는 거울이기도하다.
돈이 사람의 본질을 시험하고 드러내는 도구라면 돈이 많아질수록 더 따뜻하도록 더 나누어야 한다.
철학자 세네카가.“함께 나눌 수 없다면, 아무리 큰 것을 소유해도 기쁨을 누릴 수 없다.”라는 말처럼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더 기쁨이 될테니까.
부자가 되고 싶다.
통장 속 숫자를 늘리기 위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부자.
내가 번 돈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한 아이의 꿈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부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늘도 조금 독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살아간다.
왜냐하면 내가 꿈꾸는 부자는 단순히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자는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