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니

언니의 수채화

by HAN

나에게는 언니가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 언니가 아니라 특별한 언니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나는 인생의 반을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좋은 것을 혼자 누리지 못하는 엄마처럼 언니는 나에게 때론 엄마였고, 때론 같이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였고, 때론 내가 언니인 양 얘기하면 귀를 기울이는 동생이었다. 그래서 언니와 나의 SNS 글에는 " 함께 여서 감사"라는 내용이 많다.


50 대 후반인 언니는 30 년 이상을 보건 교사로 근무했다. 언니는 명예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고, 지금껏 근무했던 곳을 떠나는 언니의 삶을 돌아보니 감사와 사랑의 열매가 많다. 오랜 시간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함께 웃었기에, 언니 삶의 열매가 내 삶의 열매인 것처럼 내가 뿌듯하고 너무 기쁘다.




언니가 보건 교사를 하게 된 건 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맏이였던 언니는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했고 엄마의 권유로 간호대를 선택했다. 치과에만 가도 쓰러질 만큼 간호사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입학 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었던 그 힘든 시간을 언니는 잘 이겨냈고 나름 유능한 간호사가 되었다. 병원에 다니던 중 우연히 보건 교사 임용 고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합격한 후, 그때부터 지금껏 아이들과 함께해 오고 있다.

언니는 항상 얘기한다. 중학생들은 반전이 있어서 좋다고. 아이들을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의 숨은 언어를 이해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을 꿈꾸게 했던 언니.


언니는 학년이 바뀌면 전교생 이름을 외웠고, 특별한 사랑이 필요한 아이는 보건 도우미를 시켜서 더 많이 함께 했다. 너무 속상해 보이는 아이와는 운동장을 산책하기도 하며,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되어줬다. 학교에 적응 못 하는 아이, 왕따를 당하는 아이, 밝게 웃지만 안으로 울고 있는 아이 등 언니의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 자연스레 보건실에 왔고, 언니는 학교에서 항상 바빴다. 언니의 오지랖과 사랑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조금 더 학교에 머물렀고, 친구 없는 아이들이 친구를 만났고,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보건실에서 이야기하며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는 마지막 만나는 방학식 날, 많은 아이들이 보건실을 찾았고, 그곳에는 사랑과 감사가 흘러넘쳤다. 빼곡히 쓴 편지에도, 짧은 메시지에도 언니를 통해 선물 받은 삶의 희망 한줄기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누구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상황을 설명하며 같이 기도하자고 했던 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쁜 일부터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까지, 언니가 학교에서 보낸 모든 모습들이 한 편의 예쁜 수채화가 되어 보이는 것 같다.


때로는 그 아이들의 삶에 너무 깊게 연관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런 언니가 너무 자랑스럽다. 언니를 간호 대에 보내고 마음 아파했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훗날 언니가 이 모습일 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언니를 위해 항상 기도하는 마음이었고, 스승의 날이 되면 언니에게 꽃 바구니를 보내 언니를 격려했다. 엄마에게 언니는 특별히 더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이제 언니가 학교를 그만두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하신다.




지금껏 나는 언니만큼 바르게 살기를 갈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환경을 탓할 수도 있었고 너무 힘들면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언니는 맡겨진 일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때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많은 사람들을 챙겼다.


언니는 태교를 할 때 두 가지를 바랐다고 했다. 하나는 아이의 눈꼬리가 내려가는 것이고 둘째는 좀 모자라 보일지라도 착하고 순한 것이다. 어느 곳에 머물든 머무는 곳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고, 크면서는 사랑을 줄줄 아는 자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다고. 언니의 이런 마음 때문일까? 언니의 아이들은 언니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내가 심은 대로 내가 받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그런 마음도 사랑이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눈꼬리가 처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많이 사랑하기도 한다.




모두에게 그러하듯 언니와 내게도 아픔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고, 사랑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갈망하는 만큼 강한 좌절이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서로 손을 잡고 지금까지 온 우리는 안다. 그 상처가 우리의 눈을 치료하고 밝게 한 안약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처가 없었다면 그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그렇게 절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나간 일들에 매달리지 않고, 엉뚱한 생각으로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믿음의 열정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소망하는 언니를 응원한다.


아울러 환경 때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분들께도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기대와 다를 수도 있지만 인내한 시간의 열매가 꼭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