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Sep 29. 2022

꼬부랑 할머니와 고흐

우리는 우리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나는 가끔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늘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문득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생각났다. 곡선을 사용해 하늘을 표현했기 때문일까? 꼬부랑과 열두 고개의 이미지도 곡선이니까.


나에게 고흐 그림의 곡선은 흐느낌으로 다가온다. 곡선으로 표현한 화려한 색채의 밤하늘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호락호락할 거 같지 않은 꼬부랑 할머니가 넘는 열두 고개는 죽음을 향하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두 작품은 뭔가 많이 닮았다.


난 고흐의 삶에 관심이 많다.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엄청 갈망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渴望(목마를 갈, 바랄 망). 고흐는 무엇을 갈망했을까?

죽기 전 마지막으로 고흐가 머물렀던 오르베의 풍경 사진은 너무나 아름답다. 고흐는 그곳에서 그림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감했다. 동생이 준 돈으로 생활하던 고흐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식사 때마다 테이블보를 조금씩 잘랐을 만큼 궁핍했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리고 싶을 만큼 그림을 그렸다.


가난과 외로움, 실패한 화가로 요약되는 초라한 삶을 살다 간 고흐. 그의 삶이 다시 조명되고 그의 작품이 지금껏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건 그 안에 담긴 엄청난 갈망 때문은 아닐까?




왜 나에게는 이렇게 슬픔이 계속될까?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지?

고흐의 고뇌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잘하고 싶어서 절망하고 기쁘고 싶어서 슬퍼진다.

삶과 죽음도, 기쁨과 슬픔도, 행복과 불행도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있는 건 아닐까?


산다는 건 어쩌면 지뢰밭을 지나며 사소한 행복을 찾는 건 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무사히 지나가지만 운이 나쁘면 지뢰를 밟기도 한다. 지뢰를 밟으면 죽을 거 같지만 또 그대로 함께 한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다시 일어나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또 사소한 행복에 웃는다.


꼬부랑 할머니도 이유를 알고 열두 고개를 넘은 건 아닐 거다. 열두 고개를 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거고 때론 씩씩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냥 걷다 보니 넘은 고개가 열두 개나 되었을 거다.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지뢰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또 고흐가 살아생전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지금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거다.

보이는 것 때문에 눈감지 않고 고흐처럼 무언가를 갈망하는 삶, 꼬부랑 할머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게 자신의 길을 걷는 삶이길 바라본다.


각기 바람에 흔들리지만 함께 있어 더 예쁜 코스모스처럼, 각자의 힘겨움에 흔들리지만 함께 따스하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고흐의 작품이 누군가에 의해 알려진 것처럼 우리 삶도 함께 한 사람들 덕분에 빛나는 날이 올 거다.

작가의 이전글 너는 너를 어떻게 생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