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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pr 27. 2023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B사감과 레브레터

며칠 전 누군가 농담으로 나에게 'B사감과 레브레터'의 B사감 같다는 말을 했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나 웃으며 팩폭 날린다는 소리를 들어와서 별생각 없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사감 같다는 말과 B사감 같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다. '사감 같다'는 '관찰과 지적'에, 'B사감 같다'는 '위선'에 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위선자라고 대놓고 욕한 거다. 헐~^^

사실 잘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말이고 사감 같건, B사감 같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말을 계기로 내가 'B사감과 레브레터'를 다시 읽은 거고 작가 현진건을 좋아하게 된 거다.


다시 읽으며 내가 솔깃했던 건 맨 끝부분이다.

“에그 불쌍해!”

하고,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셋째 처녀가 흘린 눈물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미쳤다고 생각해서 불쌍하다고 느낀 건지, 그 마음을 이해해서 불쌍하다고 느낀 건지. 난 마지막 문장에서 비난과 조롱이 아니라 동정과 이해를 향한 작가의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단편들을 읽었다. 빈처(貧妻)를 읽으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았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소설가 겸 언론인이었고, 독립운동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문학인으로서의 지조를 지기에 가난했. 그런 남편을 아내는 말없이 격려했고, 작가는 아내만을 사랑다. 세세히 쓸 수 없지만 작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동적인 부분이 많다.



심심해서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AskUp에 물어봤다.  


'누가 나한테 B사감과 레브레터의 B사감을 닮았대. 뭐라고 할까?'

'이 상황에서는 타인을 비하하는 말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B사감은 특별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으며, 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매력에 끌리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서로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것도 적극적으로 인정해 보세요. 이렇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알고 하는 대답은 아닌 거 같아서 다시 물어봤다.

'운수 좋은 날 작가 현진건에 대해 알려줘~'

'운수 좋은 날은 대한민국의 만화가 현진건 작가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연재한 로맨스 장르의 대표작입니다.'


'B사감과 러브레터 내용 알려줘'

'죄송합니다.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작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첫 질문에서 모른다고 했어야하지 않을까?

나쁜 의도는 없지만 잘못된 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알려준다. 그려주는 그림은 더하다. 입력된 정보를 짜깁기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정보가 너무 적다.


난 AskUp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문제점이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데이터를 조합해 만든 오류를 사실인 것처럼 답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난 AI의 할루시네이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느낀다는 말이 맞다면, 우리도 정보 부족한 AI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경험부족, 지식부족, 사랑부족 상태로 내린 결론을 최선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남자나 러브레터에 치를 떨던 B사감이 밤에 혼자 러브레터를 보며 열렬한 일인극을 하는 것을 보면 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나도 눈물이 났을까?

B사감이 실제 연애를 했다면 언행불일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되짚기는 했겠지만.

그런데 이건 연애를 포기한 사람의 감춰진 연애에 대한 갈망이고 왜곡된 표현이다. 자유연애가 확산되는 시기에 B사감이 누리는 밤의 낭만이다. 가치관의 혼란 시기를 사는, 나이 많고 예쁘지 않고 무뚝뚝한 성격인 B사감은 열등감 있는 자신을 보호하며 행복하고 싶었을 거다. B사감이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내린 결론은 AI의 할루시네이션 같다. 마음과 생각,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더 폭넓고 깊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준 따스함이 넉넉했다면 다른 시선으로 남과 나를 바라봤을 거다. 그래서 밤의 낭만이 안쓰럽다. 나도 눈물이 났을 거 같다.




문학이나 예술작품 대해 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내게 솔깃하게 다가오는 작품이 있으면 검색을 한다. 작품보다 작가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나를 솔깃하게 하는 작가라면 작품을 통해 전하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한다. 내겐 결과물 보다  '어떤 사람인가' 더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AI의 할루시네이션을 보며 타산지석 (他山之石)으로 삼는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경험부족, 지식부족, 사랑부족의 결과일 수 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고, 틀렸을 수 있기에 더 많이 둘러보고, 더 많이 귀 기울이려 한다.


현진건 작가처럼 고뇌와 좌절 가운데서도 옳음을 향하고 따스함을 남기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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