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건반을 못 친다. 사진은 나의 낭만이다. 건반은 단음으로 음을 익히는 데 사용한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하루 가기는 했다. 양손을 따로 움직이는 게 이해되지 않고 어려워서 그만뒀다. 그만뒀다기보다 시작을 못했다~^^
건반이 나의 낭만인 이유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할 곡의 가사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큰 사랑, 그럴듯한 사랑, 위대한 사랑. 그런 거 안된다. 사소한 사랑, 소심한 사랑, 너무 작아서 있는 듯 없는 듯 한 그런 사랑. 그래도 알고 나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랑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난 스케일이 너무 작다. 그런데 우연히 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작년에 내 사진에 이런 글을 썼었나 보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땐 웃음이 났다. 열린 마음에 열정까지~ 소심한 마음에 비해 꿈이 야무지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음 한편에 안쓰러움이 고개를 든다. 나만 아는 나의 애씀이 보여서.
"상상력 덕분에 소박하고 작은 꿈이 생겼다. 눈 덮인 나무처럼 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주어진 것들을 잘 감당하면서,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
너보다 한심한 나도 겨울을 지나 봄으로 왔다고, 돌에 새겨진 것 같은 슬픔도 언젠가 따스함으로 덮어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삶의 계절'에 썼던 내용이다. 난 그렇게 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있는 상황이 꽃밭인양 감사하려고,
불평하고 원망해서 누군가를 겨울로 밀어내지 않으려고,
내 머리의 무게로 누군가의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으려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줄 알면서 외면하거나 눈감지 않으려고,
혼자만 웃는 게 아니라 함께 웃으려고,
사랑을 사랑으로 받으려고.
무엇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기억하고 누리려고.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난 때로 누군가 밀어냈고, 눈감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고, 감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수시로 내 마음과 생각을 점검하고 다독였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은 거 같다. 내 말끝에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봐~ 자기 자랑, 자기 합리화~"
그 말에 화가 아니라 웃음이 났다. 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애썼고, 그런 선택을 한 내가 자랑스러웠으니까.
지금 그곳에 다시 간다면 난 가서 안아주지는 못할 거 같다. 두 팔을 벌리고 이리 와서 안기라고~^^
난 이제 너무 많이 애쓰지 않는다. 대신 좀 더 넓은 품으로 안을 수 있다. 후덕해진 아줌마의 품처럼.
너무 많이 애쓰지 않으면서 낭만을 보게 된 거 같다.
난 요즘 약국 동료들과 상상을 하며 논다. 처음엔 여럿이 함께 했는데 하다가 알게 됐다. 아줌마들이 다 나처럼 철이 없지는 않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주로 둘이 논다. 나랑 같은 시기에 들어온 동료는 감정을 쉽게 그림으로 표현한다. 30년 가까이 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린 제법 잘 맞는다. 우린 함께 상상을 하고, 그 친구가 그림을 그리면 난 그 그림에 이야기를 입힌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도 나누고 공유한다. 우린 화, 수, 목, 금 같은 사람들이다. 직장을 가야 하는 날들이지만 특별히 싫거나 좋을 이유가 없는 화, 수, 목, 금. 우린 그날들처럼 뭔가 결핍이 있고, 뛰어나지 않지만 서로 잘 어우러진다.
난 동료들 덕분에 행복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놀러 가는 사람처럼~
내가 쓰고 싶은 노래 가사도 화, 수, 목, 금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심한 사람의 작은 마음에서 나오는 사소한 이야기. 실수와 오해를 통해 알게 되는 작은 배려와 사랑 이야기.
지금 작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해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언젠가~^^
그런데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각자의 낭만을 찾고, 즐거운 상상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그 행복에 행복을 더하는 비결은 엄청 간단하다. 그 행복한 상상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거다. 혼자 웃는 것보다 함께 웃는 것이 더 신나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