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근무힐 때 퇴원약 복약지도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뵈었던 한 어르신의 눈물과 농담이 머리를 스친다.
혼자 계셔서 사회복지사에 의해 입원 후 심장 수술을 받으셨던 분이셨고, 내가 복약지도를 갔을 때는 당신이 퇴원 후 어디로 가는지 모르셨던 상황이셨다. 퇴원약에 대해 설명하려는데 그분이 그러셨다. 먹고 죽는 약이냐고. 먹고 죽는 약이면 좋겠다고. 퇴원하면 간병인도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어르신을 위해 애쓰시고 사랑하시는 분들 덕분에 치료 잘 받으셨으니까 약도 잘 드셔야 한다는 나의 말이, 나에게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어르신에게 닿지 못하고 사방에 흩어지는 거 같았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시는 분에게, 약을 잘 드셔야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르신을 위해 애쓰시고 사랑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말이 다가올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망설이는데, 커다란 문신을 한 젊은 환자분이 어르신에게 오셨다. 난 그 순간 퇴원 잘하시라고 인사를 건네시는 그분이 너무 감사했다.
"어머, 친구분오셨네요~"
난 어르신에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그분은 친구라는 말에 잠시 당황하시다가 친구 맞다고 웃으셨다. 좋은 곳으로 간다고, 요양병원으로 간다고 들었다는 그분의 말에 어르신은 재차 확인하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셨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약 드셔야 하는데"라고 하며 그분을 쳐다봤고, 그분은 어르신께 약 잘 드셔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가셨다.
복약지도를 하고 나오면서 약 잘 드셔야 한다는 나의 당부에 어르신은 아침약, 저녁약 바꿔 드실 거라며 농담을 하셨다. 촉촉한 눈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는데 한번 더 눈물이 났었다.
죽음을 더 가까이 바라보고 계신 어르신들의 삶.
자신을 돌봄, 스스로 누림, 미리 준비함. 내가 알고 있는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이런 여유가 없으셨다. 그냥 애쓰고 버티는 게 다였던 삶. 난 그분들의 삶을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도 난 기억하고 싶다. 그분들의 삶을. 눈물과 한숨을, 외로움을,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