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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ug 18. 2023

이렇게 여름이 간다

아이 같은 이들의 울타리 안에서

여름의 낭만은 내게 이런 소리로 다가왔었다.

철썩이는 파도 타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두렵지만 기쁨 담은 소리,

총총~ 총 박힌 별들의 리듬 타고 소야곡을 부르는 젊은이의 부드럽지만 설렘 담은 소리,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점박이 수박으로 달래며 듣는 매미의 시끄럽지만 정겨움 담은 소리.


나이 탓일까? 올해는 내게 다른 소리로 다가다.

태풍, 홍수, 폭염으로 낙심한 이의 조용하지만 아픔 담은 소리.

그래서 올해 여름은 신나면서도 금세 시무룩해진다. 이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외로움이다. 애쓰고 애써도 어쩔 수 없어서 절망하는 이가 느끼는 외로움.


여름에게 난 뭐라 위로를 건넬까?




일상의 평온함이 깨지고 여기저기 들쑤셔진 듯 어수선했던 여름이 간다. 


청소년부 수련회를 앞두고 나를 포함해 가족들이 돌아가며 심한 목감기를 알았다. 거기에 더해 에어컨이 고장 난 걸 방치해서 컨디션이 엉망이었던 난 수련회를 가기 직전 에어컨을 고쳤다. 진작 고쳤으면 좋겠지만 게으름 덕분에,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느라 여름마다 병이 났던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자기변명을 잊지 않았다~^^


수련회를 다녀오니 세탁기 고장 나 있었다. 교체할 때가 되긴 했지만 수련회에 가져간 모든 옷을 빨아야 하는 시점이라 당황스러웠다. 세탁기를 주문하고, 작은 방을 통해 세탁기를 넣어야 해서 급히 세탁기 들어갈 자리를 만들었다. 작은 수고가 들었지만 지금은 새 세탁기를 사용한다.


그 주 금요일부터 교회에서 영적 대각성 부흥집회가 있었다. 금요일 퇴근 후부터 참석하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려는데

아랫집에서 올라오셨다. 물이 새는 것 같다고. 작년에 누수 때문에 도배를 해드렸는데 작년보다 더 심한 모양이다. 전에 봐주셨던 분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했지만 바쁘셔서 화요일 일찍 오시기로 했다. 물을 잠그고 필요할 때만 잠깐씩 열면서 이틀을 지냈다. 세탁기는 당연히 못 돌렸다. 정수기 사용도 못하고, 변기와 설거지를 위해 물을 받아놨다. 샤워할 때만 물을 열어도 각자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달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름 경을 썼는데 월요일, 아랫집에서 문자가 왔다. 주방까지 번지는데 내일 몇 시쯤 오시냐고. 죄송한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나의 문자에 죄송하다고 답장이 왔다. 왜 죄송하시냐고, 제가 죄송하다는 문자에 이렇게 답장이 왔다.

 "주방 쪽은 도배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아직 누수 보험관련해서 진행 중이다. 누수 점검을 하느라 작은 방의 짐을 모두 빼서 아직도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일이 없었으면 알지 못했을 마음이다. 이웃의 사랑~


아빠가 계신 요양병원 코로나 확산으로 당분간 면회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미리 면회를 예약했고 병실에 혼자 계시니까 병원에 얘기를 해보라는 간병 여사님의 권유 덕분에 아빠를 보고 왔다.

아빠는 퇴원 후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후에도 여전히 간간히 미열이 있고, 조금만 먹는 양을 늘려도 설사를 하셔서 콧줄로 공급하는 캔조차 제대로 드시지 못한다. 전보다 기운이 없으시고 전처럼 길게 말씀을 못하신다. 한 말씀을 하시고 한참 후에 그 뒷 말씀을 하신다. 환자 모니터에서 주기적으로 들리는 띠띠소리는 그 사이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한다.

목사님 내외분이 동행하셨는데 아빠는 이제 꿈을 이뤘다고 하셨다. 목사님이 오시기를 바랐는데 오셔서.  이 말에 눈물이 흘렀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급격히 나빠질지 알 수 없기에...




사소한 불편을 통해 바라봐지는 것도, 슬픔과 외로움 안에 보이는 도 여전히 사랑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일상의 기적이기에, 매 순간 기적을 경험하기에 감사하다.


별일도 아닌데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의 울타리. 내게 그런 울타리는 없다. 아마도 신이 아니라면 사람의 그런 울타는 없을 거다.   문제 상황 앞에 나보다 더 큰 소리 우는 아이 같은 이들의 울타리가 있다. 함께 울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서로 마주 보며 함께 웃는 이들의 울타리.


서로에게 그런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다. 의연하지 못하고 더 겁쟁이여서 더 큰 소리로 울고, 생각이 달라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라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그런 이들이 만드는 울타리. 그 울타리 안에서 함께 울고 웃으면 각자 살아야 할 삶을 잘 살아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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