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게 될 거 같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방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나 보다.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는 성격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젊었을 때 내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때의 기억이 창피함을 알려주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서 지난겨울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줄 알았다. 그 상황에 놓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 상황에 놓이면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많이 입은 사람과 상처를 덜 입은 사람만 있다고. 이런 생각은 누군가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존경하지도 않게 한다.
지난달 나는 코로나에 걸려서 심하게 아팠다. 기침과 인후통이 심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억지로 밥과 영양제를 먹는 것이 전부였다. 물을 넘기는 것도 목이 아프기에, 밥알을 넘기는 건 밥알이 상처 난 피부를 통과하여 지나가는 걸 고스란히 느끼는 과정이었다. 격리 기간을 거의 누워서 지내면서 유튜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린 것을 알았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상황이 된다고 다 그렇게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낸다는 것은,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는 다르다. 주인공들이 덤덤히 “나 그때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옳음’을 향해 가는 삶. 사람마다 옳음의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옳음을 고민하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낸다면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얼마 전 엄마의 삶을 돌아볼 계기가 있었다. 엄마만큼만 살아낼 수 있으면 감사하다는 글을 쓰면서 이제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왜 엄마, 아빠를 존경한다고 말하는지. 잘 몰라서 허울을 보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많지만 잘 알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 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