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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ec 28. 2023

눈물에 빛이 닿다

백만 원짜리 위로의 글을 쓰고 싶다

처음으로 자화상을 그렸을 때, 이런 문구가 생각났었다.

'달팽이가 내게 말을 건다. 너도 알아? 나도 빨리 움직이고 싶은 거?'


며칠 전 눈이 많이 온 날, 창밖으로 눈 위를 느릿느릿 가는 달팽이를 봤다. 아가의 웃음소리처럼 밝게 빛나던 눈이었는데 그날따라 빛을 잃고 회색빚으로 보였다. 눈마저 침울한 길, 그 위를 우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가는 달팽이. 전에 내게 말을 건 그 달팽이다. 겨울잠을 자야 할 시기에 뭐가 그렇게 절실하기에 몸이 상하는 것도 감수하고 움직일까? 안쓰러움에 눈물이 떨어졌다.

난 달팽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너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어서 난 내 눈물이 신에게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눈물은 아래로 흐를까요?

 눈물은 당신께 닿을 수 없습니다.

위에 계신 당신께 눈물 닿게 할 방도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눈물이 달팽이에게 떨어졌다. 주춤하던 달팽이가 웃으며 나를 본다.

"고마워. 나는 촉촉해야 더 잘 갈 수 있거든."

달팽이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눈물... 떨어지는 눈물, 누군가에게 닿는 눈물.

나는 다시 기도를 했다.


당신의 마음은 거기 계셨군요.

내 눈물이 닿는 곳, 내 눈물이 모이는 곳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달팽이에 대해 검색하고 달팽이 그림 글씨를 그리며 '그 길 위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위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엉뚱하게 백만 원짜리 위로의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 원이 생각난 건 아마 어떤 분의 뒤늦은 조의금 때문이었을 거다. 내게 거저 주는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 내게 사랑을 흘려보내실 때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든 상황이셨다는 이야기를 최근에야 들었다. 그래도 공부 잘하고, 조용히 맡은 일 잘하는 내 모습을 보면 좋다고 하셨다. 내가 특별히 그분을 위해 뭔가 하지 않았어도 그분에게 기쁨이 되었나 보다.


백만 원짜리 위로 글을 쓰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듣고 호호 아줌마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걸로 하면 되지. 호호"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신 앞에서 우는 것과 최선을 다해 내 자리에 있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시선이 간다면 그건 안쓰러움 때문일 거다. 이 글은 백만 원짜리는 아니지만 약속 어음 같은 거다. 그 누군가에게 하는 약속의 글이다.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할게. 너무 속상해하지 마. 이제 눈물을 닦을 수 있겠지?"


달팽이에게 닿은 눈물이 웃음을 준 것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께 기쁨이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거 하나 더 있다. 웃는 거.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들께 나의 웃음을 선물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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