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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an 03. 2024

2023년의 그리움을 소중함으로 봉하다

2024년을 소망으로 살아내길 기대하며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한 해가 온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년 반복되는 연말과 새해에 나는 점점 무뎌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무뎌져간다기보다 무너져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이 얹어놓은 무게를 쇠약해져 가는 몸과 마음이 버겁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왜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을까? 새해를 맞기 며칠 전부터 그림글씨를 만들겠다고 50번도 넘게 그림움을 적었다. 이런 모양의 그리움, 저런 모양의 그림움, 또 다른 모양의 그리움...

그리고 2023년을 하루 남긴 날 난 이렇게 적었다.


밖에는 눈이 많이 와.

난로 위 주전자에서 물이 끓고,

물을 휘저어 놓은 차의 향이

온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걸 보고 있어.

차 향의 자유로움 때문일까?

네가 생각나.


소리로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벚꽃처럼 휘날렸으면 좋겠다던 나의 말을

너는 들었겠지?

그 말에 마음이 아팠을까?

네가 있었으면 네게 갔을 텐데.

네가 보고 싶어.

 

2023년에 있었던 가장 큰 일은 아빠의 소천(召天)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일주일쯤 전, 난 마음으로 아빠에게 물었었다. "아빠는 어떤 꽃이고 싶었어? 난 미련 없이 흩날리고 갈 벚꽃이고 싶어."

그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흩날림으로 슬픔에 짓눌린 마음에 희망을 주고 싶었나 보다. 그날 그때의 마음이 다시 생각났다.


나를 고개 떨구게 하고, 미련의 긴 꼬리를 남기게 하고, 때로 씩씩거리게 하는 그리움. 거기에 눈물 웅덩이를 가지고 있는 그리움의 그림글씨를 만들고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빠를 그리워하나? 난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때 상실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빠가 계실 때 난 버거웠지만 그립지 않았다. 언제든 가서 뵐 수 있으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버거움이 덜어지고 그리움이 찾아왔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 놓아져 버린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다.


상실은 뭔가를 가지고 있었음의 의미한다. 돌아보면 나는 버거움만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타고난 것들이 무너져간다 해도 나는 그동안 그것들을 누리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고받은 사소한 사랑들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다. 서로 오해하고 상처 주지만 마음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난 그걸 사랑으로 분류한다. 난 많은 걸 가지고 누려왔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큰 돌을 매고 강을 건너는 것처럼 우린 저마다의 버거움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징징거리지만 그건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일 거다. 우린 가벼운 존재라 그것마저 없다면 새털처럼 이리저리 날려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쓸 때 난 우울한 마음이었다. 삶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자유로운 새처럼 훨훨 날지 못해서.


그리움을 거처 상실과 삶의 짐으로 이어진 생각은 소중함에 도달했다. 내가 자유로운 상황이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걸 생각하면 기껏해야 여행이다. 그게 정말 내가 추구하는 삶일까? 그건 회피다. 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의 전쟁터에 있어야 한다. 때론 두려움에 눈을 꼭 감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가! 그리움이 아니라 지금을 소중함으로 채워갈 거다.


우리는 우리 삶의 어느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짐이라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도 알지 못한다. 신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모두가 보기에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실 거다.


난 우울함을 벗고 2023년을 소중함으로 잘 넣어두기로 했다. 불순물이 있다면 가만히 둬서 앙금을 가라앉히고 잘 걸러 예쁘게 넣어둘 거다. 그리고 만나는 이들과 함께 웃으며 2024년을 감사함으로 채워갈 거다.


내게 2023년의 대표 단어가 그리움이었다면, 2024년의 대표 단어는 소망으로 정했다. 고심 끝에 이렇게 그림 글씨로 표현해 봤다.

우리 모두 이렇게 2024년을 섬세함으로, 뜨거움과 간절함으로 잘 살아내고, 2024년을 마치며 함께 활짝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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