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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pr 21. 2024

삶을 배우는 여행 3

삶의 굴곡이 모여 문양 되고, 문양이 모여 아름다운 작품 되는 삶

아가야,

바람이 불어.

이제 따스함 안은 순둥이 바람이야.


그 바람 덕에 꽃잎이 날려.

까르르 웃으며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처럼

웃음 가득 안고.


머리 위 꽃들의 환한 미소,

까치발을 하듯 진한 빛깔로 눈길을 끄는

키 작은 꽃들.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라 그런가 봐.

조금은 슬픈 게.

계절의 아름다움이 지면 슬픔도 걷히겠지?


아가야~

누군가 물었다. '아가'가 누구냐고?

아가를 부르는 사람은 나다. 그냥 '나'가 아니라 신이 주는 사랑을 듬뿍 안고 있는 나.

'아가야'는 정확히 표현하면 '사랑하는 우리 아가야'다.

내가 부르는 아가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의 나'이기도 하고 '위로가 필요한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거는 호칭이기도 하다.


바람, 바람은 삶의 굴곡을 만드는 흔들림이다.




엄마, 언니, 조카와 함께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 생신기념으로 셋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도 누리라고 조카가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신안 문준경 전도사님 기념관만 넣으면 된다는 우리의 의견을 듣고, 조카가 모든 스케줄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고 운전을 했다. 조카 덕분에 우린 3일 밤을 각각 다른 분위기의 숙소에서 묵으며 그곳을 누렸고 생각지도 못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왔다.


월요일부터 비가 와서 오늘밖에 맑은 날이 없다고 재촉하는 조카의 소리에, 오후예배가 끝나자마자 차를 탔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른 채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다.

교회 벽면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오후예배를 드리기 전 청소년부실 물품을 가운데로 모았었다. 그때 버리는 음악노트 한 권을 챙겨 왔는데 그건 신의 한 수였다. 난 그림을 그리러 온 사람처럼 매일매일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손이 가는 대로 주제도 없이. 다녀와서 다시 보니까 의도치 않았지만 나름 주제가 있는 거 같다.




첫날, 엄마와 언니 모녀 

차를 타자마자 난 그 음악노트를 폈다. 엄마의 삶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적었다. 말도 안 되는 맥락 없는 질문에 조카가 한마디 했다. 바보 기자 아니냐고~^^.

우린 엄마 삶을, 엄마의 엄마 삶을 살짝 들여다보고 마음에 담았다. 듣기만 해도 너무 속상한 삶을 살다가 39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정해숙 할머니, 예쁜 할머니 덕분에 엄마가 고운 모습으로 따뜻한 추억 안고 사셨어요. 할머니 삶은 아가들 덮어주는 작지만 도톰한 이불이었나 봐요. 손녀인 제가 따스함으로 할머니 기억할게요."

할머니는 모르셨을 거다. 몇십 년이 지나서 누군가 할머니 삶을 재조명하고 기억할 거라고.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사랑으로 애쓰며 살아온 삶은 허무한 삶일 수 없다.


조카가 처음 우릴 내려놓은 곳은 홍성이었다. 시골 마음에 덩그러니 있는 집이다.

언니와 조카가 장을 보러 간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오른쪽 위 그림은 언니 모녀 같다.

때론 서로를 바라보고, 때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똘똘한 모녀.

삶의 굴곡이 모여 문양 되고, 문양이 모여 작품이 되어가는 우리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모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신의 사랑 안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도 담대하길 바란다. 분명 아름다운 작품 될 테니까.


아래쪽에 있는 그림은 엄마 같다.

엄마의 마음이 되어 돌아본 엄마 삶의 모습

(몸통)

허리가 휘도록 한평생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새 수줍던 아이는 여장부가 되었습니다.

삶이 소용돌이에서 가족을 위해 이를 악 물고 견뎠습니다.

남편이 신앙이 없었을 때는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기 위해 담장을 넘기도 했습니다.

딸만 낳은 것과 경제적 궁핍이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머리)

신이 머리에 씌워주신 보호막이 있었기에

크고 작은 삶의 힘겨움과 신앙의 핍박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꼬리)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제 삶을 선물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긴 꼬리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제가 만났던 다른 이들이게도 선물 같은 삶이었길 소망합니다.


조카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고, 사진을 찍었다. 고무장갑 등 주방용품을 소품 삼고, 찬송가를 부르는 우리 엄마. 엄마의 공연에 관객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둘째 날, 나

우린 군산 철길마을에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65년쯤 전에 입었던 교복을 다시 입고 사진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포즈를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뭔가 가슴 뭉클하게 마음에 남아있다. 할머니가 돼도 그 안에 남아 있는 앳된 소녀. 지금 나에게도 남아 있는 나의 앳된 소녀.

오른쪽 위 그림은 탈출을 꿈꾸는 나, 아래 그림은 싸움에서 이길 많은 무기를 장착한 나 같다. 난 왜 탈출을 꿈꾸고, 끊임없이 싸움을 생각할까?

나의 싸움은 선을 선택하기 위한 싸움이고, 마음의 성벽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의지와의 싸움이다. 장착된 많은 무기들은 물고, 뜯고,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무력하시키거나 독을 정화시키는 그런 류의 도구이다.

이런 나의 싸움은 항상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상처 입힌다. 그러면 탈출을 계획하고 아픈 나를 위로한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사진의 글들을 썼다. 바보 같음... 나는 나에게 말해줬다.

아가야, 푸른빛 너른 바다를 품어서 그래. 보물이 숨겨진 풍랑이는 너른 바다~


난 앞으로의 삶을 위해 고민 중이다. 모든 면에서 미숙해서 안쓰러운 나이기에 신 도움이 필요하다.  


우린 점심을 먹고 고창 청보리밭으로 이동했다.

빗방울 안은 청보리들이 모여있는 게 너무 예쁘다. 삶의 힘겨움에 눈물 안은 우리도 함께 있는 모습이 이렇게 예쁘지 않을까?    




셋째 날, 신앙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노트를 펴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굴 동글, 동굴 동글.

두 그림은 말씀 안에서 꽃 되어 살길 소망하는 마음 같다.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다른 동그라미들이 모이면 꽃이 되고, 그 꽃들은 자유롭게 흔들리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꽃들이 강대상을 연상케 하는 탁자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그림을 그리는데 믿지 못할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금방 내 옆을 지나간 엄마가 툇마루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한 바퀴를 구르고 계셨다. 크게 다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 상황을 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처음 알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으셨다. 혹시 몰라 챙겨갔던 청심원을 드리고, 근처 정형외과에 들렀다. 오래전 발목 수술 후 빼지 않았던 철심이 도움이 됐다는 말에 감사하며 우리가 원했던 문준경전도사님 기념관으로 향했다. 조카가 어디선가 빌려온 휠체어 덕분에 엄마도 편하게 둘러보셨고 우리는 그 와중에 기쁨을 누렸다.


신앙, 내가 생각하는 신앙은 신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어떤 것도 괜찮은 마음이다. 손이 떨려 덧칠로 시작한 나의 그림처럼, 그림을 그리다가 선이 크게 빗나가면 더 큰 그림이 될 거고, 색이 혼합되어 있는 물통의 물이 쏟아지면 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될 거다.

삶의 예상치 못한 상황들도 그렇지 않을까? 물론 그 순간은 많이 아프고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그래도 우리를 향한 신의 계획은 선하실 테니까 믿고 조금은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신안 전체를 변화시킨 문준경 전도사님의 삶은, 말 그대로 크고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여행의 마지막날을 위해 조카는 자쿠지가 있는 나주의 숙소를 예약했었다. 엄마를 모시고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아 고민하다가 우리끼리라도 그곳을 누리기로 했다. 조카의 애씀을 공중에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따뜻한 물과 아름다운 초록빛을 밝힌 조명. 우리만 누릴 수없어서 엄마를 모셔왔다.

2년 전 아빠와 함께 했던 울진 여행이 생각났다. 아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시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걱정했던 그 여행. 그때 너무나 예뻤던 파란 하늘을 보며 아빠 팔을 밀어드렸던 것처럼 우린 엄마 팔을 밀어드렸다.




넷째 날, 여행

오면서 서울 병원에 들러야 해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숙소를 둘러봤다. 쨍쨍함을 예고하는 햇살 아래 숙소와 배경이 너무 예쁘다. 난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연둣빛 넓은 잔디에 놓인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위의 그림). 그림을 그리는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가로로 그리던 그림을 세워 '순간의 행복'이라는 말을 숨은 글씨처럼 적었다. 완성되지 못한 그림을 차에서, 병원에서 틈틈이 그렸다.

내가 생각해도 내 팔은 신기하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의미가 부여되고, 그 후에 의미에 따라 조금 더 손을 본다. 이 그림은 어떤 어려움, 시련, 공격이 와도 적극적으로 다 흡수해서 사랑으로 바꾸는 장치 같다. 그걸 이용해 신이 원하시는 사랑을 만들어간다. 오른쪽 아래의 상처 난 반쪽짜리 하트처럼~


돌아오는 차에서 내가 물었다.

"이번 여행을 한 줄로 표현하면?"

그때 오간 이야기를 합해서 만든 것이 사진의 글이다. 우린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함께.


돌아와서 나의 자화상 같은 그림과 겹겹이 둘러싸인 사랑 같은 그림을 그렸다.


내게 여행은 사랑이다. 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의 경비는 언니나 언니 가족이 부담한다. 나는 그저 사랑으로 준비한 것들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나의 역할은 준비된 것들을 잘 누리게 하는 거고, 놓치기 쉬운 기쁨과 감사와 행복을 알려주는 거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둘려있는가!

돌아와서 그린 그림은 이런 의미일 거다.




여행에서 돌아와 엄마 그림을 설명과 함께 보내드렸다. 엄마가 이런 답장을 하셨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생각해 줘서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삶은 주어진 것,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아가면 된다. 가진 것이 보잘것없어도 괜찮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사랑이기에. 난 이번 여행에서 그린 그림처럼 살아가려 한다. 신의 사랑을 배워가며.

앞으로 삶의 굴곡에 조금은 더 의연할 수 있을 거 같다. 나에 대한 아쉬움도 감사로 바꾸려 한다. 신의 사랑 안에서 약함은 강함이니까.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받은 선물이다.


제목의 그림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그렸다. 주제 없이 이것저것 칠하며, 세 시간 넘게 잡고 있다가 포기하고 놔둔 그림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까 마음에 든다. 내 삶도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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