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운 시선으로
삶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60이 안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낀다. 순발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암으로 수술한 친구들도 제법 많다.
3월이 무색하게 많이 추웠던 며칠, 계절의 움츠림에 마음도 시렸었다. 내 마음의 계절은 아마 가을과 겨울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낯선 이들이었지만 잠깐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건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이다.
어제까지 겨울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다음 날엔 봄 한복판에 와 있는 듯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유독 좋았다.
활짝 핀 꽃을 보며 장난 삼아 한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가을"
이 대답도 공감 100%.
1박 2일 여행이라 늦게까지 수다를 떨고 가장 늦게 잠들었는데 가장 먼저 새벽에 눈이 떠졌다. 요즘은 사순절 특별새벽기도 기간이라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들 잠든 고요한 새벽, 나는 이 글을 적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책상을 보니 미처 치우지 못하고 간 종이가 그대로 있다. 여행 가기 전, 녹차 티백으로 종이를 적시고 내용물을 종이에 뿌려 말려놓았었다.
그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넌 무너져가는 게 아니라 깊어져 가는 거야.
네가 보는 세상은 점점 더 아름다울 거야.
넌 더 고운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게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처음인 시기.
삶의 종이에 조심스레 마음을 그려 넣는 시간.
녹차물로 들인 바탕 위에 하트를 하나씩 심었다.
사랑도, 기대도, 약간의 불안과 설렘도 모두 처음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트를 심었다.
그 안에 사랑과 기억, 기도를 담았다."
삶이 복잡해지고,
가진 것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마음은 어지럽고 어수선해진다.
화려한 색들이 충돌하고,
중심이 흐려진 듯한 나날들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모양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질수록,
그 안에서 더 조용한 마음을 찾고 싶었다."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
머리카락처럼 흘러내리는 흰색의 선들.
바셀린을 얇게 발라 색을 덮고, 감정을 눌렀다.
꽃은 흐려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머리와 마음을 나누고, 그 속의 평화를 피웠다.
이제야 나는, 조용히 한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머리와 마음을 나누고,
조용히 너를 바라보는 정원을 피웠다."
세 그림은
하나의 삶, 한 사람의 마음이
시기마다 어떻게 피어나고, 흩어지고, 다시 정돈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른 고요함은,
사랑을 가장 깊이 이해한 시선의 도착지처럼 다가온다.
그 시선으로 바라본
서로의 모습은
분명 더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