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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다른 이름, 별

그림으로 그린 나의 시간

by HAN
별들이 꽃들에게 말해.
나의 아가야. 흔들려도 괜찮아.
아니지. 흔들려야 해.


밤하늘은 말없이 꽃을 내려다본다.
그 작은 떨림을 다 아는 듯이,
어디선가 건너온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아가야, 흔들려도 괜찮아.
아니지. 흔들려야 해.”


그 말에, 나는 오래된 그림을 꺼냈다.
피고 지고, 무너지고 다시 피어났던
내 삶의 단면들이 담긴 네 장의 그림.



1. 진홍빛으로 피어난 나


누군가의 부탁으로 시작했던 그림.
하지만 그려낸 건 젊은 날의 나였다.

진홍빛 중심에서 터진 감정들,
무지갯빛 배경 위에
사랑과 투쟁과 상처를 꾹꾹 눌러 담았다.

엄마조차 예쁘다 말하지 못한 그 그림은
가장 깊고 솔직한 나였다.

버리기엔 너무 많은 정성이 들었고,

수없이 덧칠한 흔적 위에
나는 멈춰 서 있었다.

KakaoTalk_20250405_231519030.jpg 진홍의 심장


2. 무너짐으로 바라보다


그림을 덮지 않았다.
나는 그 위에, 조용히 바라보듯 손을 얹었다.
긁어내고, 덧입히고,
마치 마음속 시간을 천천히 되짚는 것처럼.


하트 모양으로 남은 자국들,
그건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 위에 남은 사랑의 흔적이었다.


진홍빛은 부드러워졌고
떨어져 나간 조각들은 바람에 흩어졌지만
그 아래 남은 자잘한 흔적들이
작고 고운 생명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움트고 있었다.


나는 그 무너짐을
애써 덮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 자리를 지우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거기에서 피어나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 하나의 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의 흔들림, 상처, 그리고 피어남조차

누군가의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KakaoTalk_20250407_122029722_04.jpg 무너짐 아래 새싹


3. 함께 피어나는 우리


그리고,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보랏빛, 노랑, 파랑, 분홍, 주황…
서로 닮았지만 결이 다른 존재들.
어느 것도 같지 않고,
그래서 더 고운 이 생명들.


누구도 같은 상처를 지니진 않았지만

누구도 혼자만 아픈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결로 흔들렸고,

그 흔들림 끝에서

다시, 함께 피어났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홀로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KakaoTalk_20250403_234237202.jpg 다채로운 꽃들의 군무


4. 꽃의 다른 이름, 별


별이 꽃에게 말했다.
“흔들려야 해.”


흔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이 그림들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이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피어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이야기를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꽃과 별이 같은 이름이라는 걸 안다.

흔들리며 피어난 나,
그리고 나를 닮은 너에게
이 그림을 건넨다.

– HAN (high and noble, 존귀)

KakaoTalk_20250405_231519030_03.jpg 별빛 아래 흔들리는 붉은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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